18시, 팀장록수정수, 팔로님 구독하신다님
@DDok_JJa
0.
끝나지 않는 계절이 있다.
1.
때는 1월. 소란스런 겨울이었다.
"김록수! 일어나서… 일어났네? 웬일이냐?"
"빗소리 때문에요."
"이런 덕도 보네. 밥 먹자. 고기했어."
"아침부터?"
"왜, 싫어?"
"최고죠."
벌써 3 일 째. 때 아니게 쏟아지는 비는 쉽사리 그칠 줄을 모르고 이어졌다. 아직 눈이 될 날씨가 아닌가 보지. 수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함박눈이라도 내려야 좀 따뜻할 텐데. 진눈깨비도 아닌 빗줄기는 제법 굵어 이른 시간에도 창문을 두들겼고, 덕분에 잠을 설치는 건 오롯이 록수의 몫이었다.
"몇 시간 잤어?"
"모르겠어요. 한… 세 시간?"
"비 때문이라고만 하기엔 너무 잦은데. 불면증인 건 아니고?"
"그 정도는 아녜요."
반쯤 감은 눈 위로 뜨뜻한 손바닥이 덮혔다. 안온한 온기였다. 록수는 때때로 스무 살 이전의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잊었다. 가족도, 연인도, 친구도 없이 혼자 걷는 여정만이 제게 유일하게 남은 길이라 여겼던 것이 거짓말 같게도 더는 그가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안정제라도 처방 받아. 산재 처리도 된다. 회사서 해 주는 건 다 받아먹어야지. 왜 미련하게 그러고 있어."
"팀원들이 걱정합니다."
"알면 알아서 챙겨야지."
그러게요. 머리 위로 입맞춤이 내렸다. 목도리 하고 가. 다정한 염려에 록수는 그저 웃고 말았다. 못된 버릇처럼 치미는 어리광을 씹던 고기와 삼켜내고 빈 그릇을 들었다. 조금 이른 출근이었다.
2.
"김록수!"
달려드는 인영에 뒤로 떠밀린 록수가 가까스로 그를 붙들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새끼, 왜 이렇게 기운이 없어? 또 못 잤냐? 팀장이 잠을 안 재워?"
짓궂은 얼굴이었다. 하. 어처구니없이 웃음을 터트린 록수가 눈을 가늘게 하자, 정수가 그를 따라 여우처럼 웃었다. 여기서 바라는 대로 굴어 주었다가는 끝도 없지. 정수를 상대하는 법은 팀내 누구보다도 록수가 가장 잘 알았다.
"팀장이 아니라 다른 누구 때문에."
"뭐? 누가 또,"
말은 채 이어지지 못하고 끊겼다. 콱 잡아 움켜 쥐어진 둔부 탓이었다. 이제 당황은 정수가 할 차례였다.
"야, 너 지금…!"
"님 생각에 잠 못 이루었다고 내가 부끄럽게 여기서 토로해야하나?"
"전혀 부끄러운 얼굴이 아닌데?"
"네 사랑이 식었는가 보지."
바짝 붙여진 코끝이 닿을 듯 말 듯한 거리에서 록수가 살살 웃었다. 눈가와 귓가로 벌겋게 열 오른 정수가 헛웃음 쳤다.
"처음 입사할 적만 해도 뻐끔대는 금붕어 마냥 새침 떨더니. 많이 변했다?"
"그래서 식었다고?"
"설마. 활활 불타오르지."
덥썩 입 맞출 기세로 달려든 정수의 얼굴이 그대로 손바닥에 밀려 치워졌다. 수혁이었다.
"기운이 그렇게 넘치면 좀 빼야지. 최정수는 따라와. 나랑 간만에 대련 좀 하자."
"예? 잘못 들었습니다?"
"잘 들었어, 새끼야."
그새 손을 물린 록수를 향해 수혁이 손을 흔들었다. 먼저 가라는 뜻이었다. 내어진 호의에 사양치 않고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록수의 뒤통수에 정수가 소리쳤다. 이따가 보자! 그래. 록수는 말없이 대답했다. 어차피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3.
[인원 파악 완료. 입구 봉쇄 마쳤습니다. 팀장님, 어디세요?]
[폭파 장치 가동한다. 슬슬 퇴로 확보해서 빠져. ]
[퇴로 확보하고, 애들 다 빼고 있어요. 팀장님만 나오시면 됩니다. 아직 안쪽이면 제가 갈게요.]
[됐으니까, 먼저 가. 금방 갈게. ]
[팀장님!]
무전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예 전원을 꺼버렸는지 몇 차례 시도한 연결이 무산되자, 잠시 고민하던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소리 한 번을 내지르곤 곧 빠르게 뛰쳐나갔다. 장치가 가동되고 나면 근방 몇 백 미터는 초토화가 될 예정이었다. 칼과 마법이 난무하고 괴수가 출현하는 시대였으나, 그렇다하여 인재가 시시한 것이 되지는 못했다.
"팀장님은요!?"
"연락 끊겼어. 일단은 철수해."
"이제 곧 폭탄 터지는 거 아닙니까? 그, 아예 다 터친다고 했잖아요. 휘말리면 시체도,"
"누군 몰라서 이러는 줄 알아!? 깝깝한 건 마찬가지니까 빠지라고!"
예정된 시간까지는 빠듯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쉬이 걸음을 떼지 못하는 신입을 남자는 더 나무라지 않았다.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다. 특수팀에 대한 사내의 소문은 분분했으나, 팀장의 괴팍함에 대해서만큼은 분명 일부 축소된 부분이 있었다. 그건 직접 겪어 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유능함. 괴팍함. 완벽주의자. 독종. 그 수많은 말들을 뒤로 하고 남자는 하나만을 앞에 붙였다. 무모하게 미친 놈. 팀 외부에서는 몰라도 팀원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말이었으나, 사적인 경외심을 가지고 지원한 신입에겐 아직 먼 나중의 일이었다.
요란한 굉음과 함께 폭파한 빌딩이 하부에서부터 상층까지 와르르 무너졌다. 폭발의 여파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불씨를 퍼트리고, 주변 건물들의 창문을 깨부쉈다. 일찍이 외부 통제를 한 탓에 날린 파편에 휩쓸린 인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얼마 되지 않아 정부에서 파견된 구급차와 능력자 관리 파견인, 경찰들이 속속이 도착했다. 언론에는 비밀리에 진행되던 불법 무기 개발의 실험 일부가 실패하며 내부 폭발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질 터였다. 이어지는 사태의 뒷수습은 정부의 몫이다. 작전은 성공적이었고, 이제 남은 것은 팀장의 귀환뿐이었다.
"무전 받아!?"
"안 받아요!"
"계속 때려!"
"아예 전원 껐다고요!"
"그래서 그냥 뒈졌다고 할 거야!?"
철수가 또 미뤄졌다. 본래대로라면 진작에 회사에 도착해 있었어야 할 선발대는 물론 후발대 역시 하수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팀 미션은 거진 완벽하게 완수했음에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팀장의 부재 탓이었다. 일이 완수되면 먼저 귀환 후 연락을 기다리라는 지시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으나, 팀내 어느 누구도 그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한두 번이 아니었음에도 매번 익숙해지질 못 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팀장님 찾았어요!"
"업고 바로 뛰어!"
찾았다. 신입이 가장 먼저 뛰쳐나갔다. 안도와 반가움에 앞서 손을 뻗자 물에서 막 나온 양 축축한 감촉이 먼저, 이후 끓는 것마냥 뜨거운 열기가 뒤따랐다. 팀장님? 당황스러운 부름에 화답한 건 팀장이 아닌 선임이었다. 저리 비켜. 신입을 밀쳐낸 남자가 익숙하게 그를 둘러업었다. 이제 집에 갈 시간이었다.
4.
거대 길드를 등에 업은 자본력도, 대중에게 호소할 명분도 없는 그림자 회사는 매순간 가장 불합리한 상황에 맞닥뜨린 채로 싸움을 시작했다. 특수팀은 그런 회사 내에서도 아주 독특한 위상을 차지했다. 정부나 길드, 내로라할 용병들도 저어하는 임무를 도맡으면서 기이할 정도의 높은 완수율을 보이는 탓이었다. 물론 실패가 없지는 않았다. 실제로 지금의 특수팀은 한 번 전멸에 가까운 실패를 맛본 후 새로 결성된 팀이었다. 한때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으나, 지금에 와서는 일종의 경이나 동경을 담아, 또 한편으로는 넌더리나는 심정으로 이렇게 불렀다. 팀록수.
"생각보다 다르네요."
"뭐가?"
"그냥, 이것저것……."
전부 다요. 희미해지는 말꼬리 뒤로 신입이 토로했다. 별종, 악바리, 독불장군… 드높은 악명에도 불구하고 김록수는 그 이름을 아는 이들의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었다. 작전 중 최후방을 지키던 잉여 자원 비각성자에서 기적처럼 능력이 발현하고, 이후 비전투 능력자임에도 최전방에서 활약하는 팀의 두뇌이자 리더, 김록수. 소설이라면 분명 주인공을 꿰찼을 터였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가 무너진 지금에 와서는 현실로 그를 영웅이라 부르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별로 근사하진 않지?"
선임의 말에 신입이 입을 다물었다. 팀장과 함께하면 뭔가 다른 게 보일 줄만 알았다. 나아가 언젠가 이륙할 그의 신화의 일부가 되어 살아 숨 쉬고 싶다는 거창한 포부도 있었다. 그러나 김록수는 주인공도, 영웅도, 주위에서 말하는 악명 높은 무언가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비현실을 살아가는 누군가에 불과했다. 위대하기보다는 위태로웠고, 생각만큼 압도적이거나 여유롭지도 않았다. 목도한 치열함은 범인들과 다를 바 없었으므로 가진 선망이 죄 어그러졌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너무 무모하고 독단적이에요. 이래서는 팀이라고 할 수 없어요. 언젠가 무슨 사단이든 나고 말 거라고요."
임무는 성공적이었다. 대중이 회사의 존재를 눈치조차 채지 못했음은 물론, 길드 해체에 대한 보수와 더불어 부가적인 소득까지 있었다. 가장 마지막까지 건물 안에 머물렀던 록수가 챙긴 연구 자료와 연계된 인사들과의 자금 운용 기록이었다. 한 것에 비해 얻은 것이 과하게 많은 결과였다. 모르고 들었다면 마법이라도 부렸냐며 찬사를 보냈을 터였다. 이런 걸 영웅이라 생각하다니.
"이건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요."
몇 가지를 포기하고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으로 훨씬 더 안전하고 무난한 끝을 볼 수도 있었다.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일부는 회사의 실체는커녕 록수의 존재조차 모를 것이다. 그렇게 무리해서 일을 진행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왜 이렇게 하는 거예요?"
지금의 팀장은, 유능한 게 아니라 그냥 죽고 싶어 안달난 사람 같아요. 신입은 속에서 들끓는 말을 집어 삼켰다. 자신이 아는 사실을 그와 함께한 팀원이, 그 중에서도 가장 오래 팀에 머물렀다는 선임이 모를 리가 없었다. 아마 선임은 저보다도 오래 옆방에 누워 깨어나지 않는 그를 보았을 터였다. 그럼에도 말리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5.
낯익은 천장이었다. 록수는 부신 눈을 꿈뻑이며 상황을 가늠했다. 다친 곳은 없고, 창밖은 조금 밝았다. 아마도 쓰러진 지 하루 정도 지난 모양이었다. 어쩌면 반나절, 그게 아니라면 하루 이틀을 더한. 수확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깼냐?"
들리는 소리에 록수가 눈동자를 굴렸다. 정수가 바로 옆에 앉아 한심하단 얼굴로 내려다 보고 있었다.
"몸 좀 사려, 이 새끼야. 그러다 진짜 제 때 못 죽는다."
"멀쩡한데."
"퍽이나."
"진짜야."
정수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과보호라 여기면서도 그 마음이 껄끄럽지 않았다. 한때는 이 걱정이 못마땅했던 적도 있었다. 저보다 몇 배는 더 험한 현장으로 뛰어드는 주제에 자신만은 가장 후방으로 돌리려는 염려가 때론 무력감이나 죄악처럼 느껴지던 때였다. 능력을 각성하기 전까지는 쭉 그랬다. 실상 각성하고 나서도 그랬지만, 그땐 이렇게 실려올 일이 많지 않았다.
"나대고 싶을 때마다 팀장 좌우명 좀 되새겨 봐. 넌 그럴 필요가 있어."
"사는 게 최고지, 그럼. 심장에 새겼다니까."
"나중에 다 끝나면 난 과수원하고, 팀장은 농장하고, 둘이서 백수인 김록수 먹여서 살 찌우는 재미에 살게 해 줘라, 제발."
"나 많이 먹어."
"우리 동네 시골이라 땅 넓다."
"그러다 내가 돼지 되면, 팀장한테 키워져야 하는 거 아냐?"
"그건 아니지."
우스갯소리였다. 정수와 록수가 잠시 마주 보고 웃었다. 일을 마치고 나면 수혁은 뒤처리로 바빴기에 다친 록수의 뒤치다꺼리는 정수의 몫이었다. 그와 록수가 가장 많이 함께한 시간이기도 했다. 정수는 종종 농담 삼아 저는 오피스 와이프, 팀장은 하우스 와이프라 말하기도 했다. 수혁은 그에 맞장구는 안 치면서도 록수와 둘이 있을 때면 아무렇지 않게 그 호칭들을 사용했다. 록수는, 사실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처음 마주한 사랑이 너무 낯설어 받는 것도 급급했던 탓이다.
"일찍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
"집에 가면 팀장한테 고기 좀 해달라 그래. 안 해 주면 우리 집 오고. 진수성찬으로 대령해 준다."
다음 대사를 알고 있다. 수십 번을 돌린 기억이었다.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지. 록수는 눈을 감고 잇속으로 중얼거렸다.
"언제든 상관없어. 갈 곳 없어지면 나한테 와. 그냥 와도 좋고. 어느 때고 책임지고 잘 키워 줄 테니까 너는 몸 관리만 잘해."
"내가 개도 아니고."
"나도 개랑 하는 취미는 없다?"
웃음들이 터졌다. 담화는 그것이 끝이었다. 이마를 쓸어내는 손 아래로 정수가 입을 맞췄다. 기억 속, 열두 번째 키스였다.
6.
"특수팀이 어떻게 생겨난 건지 알지?"
"그야, 그렇죠……."
답하는 음성이 길게 늘어졌다. 이전 특수팀은 전 팀장을 포함한 전원이 사망했고, 지금은 새로 결성된 팀이라는 건 회사 내 자자한 일이었다.
"그때 다 죽은 게 아니라 생존자가 한 명 있었어. 그게 김록수야."
선임은 당시 같은 팀은 아니었으나, 록수를 알고 있었다. 특수팀이 생긴 이래 가장 큰 장례식에서 록수는 죽은 팀원들의 모든 상을 떠맡았다. 죽음에 대한 제대로 된 변명조차 허락되지 않은 그들에겐 산재 사망이란 사인이 붙었고, 유가족들의 갈 곳 없는 원망은 모조리 록수에게로 향했다.
록수는 그 모든 걸 감내했다. 해야 할 것들을 차례대로 마치던 얼굴을 아직도 기억했다. 침착하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건조한 음성으로 팀원들의 가족들을 달랬다. 아니, 달랜다는 말로 충분치 못했다. 록수가 기계처럼 하던 말은 위로가 아닌 사죄였던 탓이다. 유가족의 원망이 회사보다도 그에게로 더 직접적으로 쏟아진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참 독해, 저거. 울지도 않잖아. 다 죽고 저 혼자 산 것도 영 꺼림칙하단 말이야.'
유독 각별하다던 이수혁이나, 유일한 동기이던 최정수의 죽음에도 눈물 하나 보이지 않는 모습을 두고, 사내에선 수상한 의견들이 분분했다. 록수도 알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어떤 감정에 매몰되는 대신 수혁이 남긴 마지막 유언을 우선시 했다. 떠난 수혁과 록수 사이에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모르나, 그는 곧장 이수혁이 남긴 모든 것을 이어 받고 새로 일을 시작했다. 팀록수의 시초였다.
"그래서요? 팀장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라는 거예요?"
"그건 모르지. 김록수의 사생활은 나도 잘 몰라. 오래 있었지만, 원체 곁을 잘 내주지 않는 사람이라서. 그러니 이건 그냥… 내가 본 것들을 토대로 가정을 해 보는 거야. 진지하게 듣지 말고 흘려들어."
선임은 잠시 뜸을 들이며 손가락 마디들을 더듬었다. 사실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는 망설임도 잠시였다. 남자가 아는 한, 김록수는 무모할지언정 불나방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가장 극한의 상황까지 내모는 듯하면서도 록수는 언제나 살아 돌아왔고, 죽음에 맞서 그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싸웠다. 죽고 싶은 독불장군으로 생각하고 있는 신입의 오해를 그냥 두기보다는 차라리 제 망상을 나누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선임이 입을 열었다.
"이전 특수팀은, 좀 각별했어. 전 팀장도 유능한 걸로 지금 못지않게 이름 좀 날렸지. 김록수와는 다른 타입이었지만, 지금 팀장을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친 것도 그 사람이야. 짐작이 가? 사람 보는 눈도 좋고, 제 능력도 좋고, 그것도 모자라서 오지랖도 넓어 참견도 많았지. 덕분에 가족 같은 분위기라고 하나… 팀장도 그땐 좀 달랐어. 어리광을 좀 부렸거든."
"어리광이라고요?"
드물게 선임의 말을 끊으며 신입이 되물었다. 스스로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의아해하는 듯한 음성이었다. 저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불신을 읽은 선임이 가볍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안 믿기지? 나도 그래. 그때도 독종 소릴 듣는 사람이었거든. 능력 비발현자일 때부터 그랬어. 그 성격에 가만있질 못하는 것도 똑같았는데……."
이전의 특수팀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굴러갔다. 모자람이 있으면 다른 쪽에서 채워내고, 실수가 있더라도 다 같이 고쳐냈다. 그게 가능한 건 순전 이수혁 덕분이었다. 특출나게 비범한 천재는 아니었지만, 그 없이는 팀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정도로 존재감이 뛰어났다. 특유의 오지랖과 인정은 유명하기도 했다. 아는 사람들끼리는 언젠가 털북숭이 하나 주워 오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되레 한술 더 떠서는 연고 하나 없는 풋내기를 데려와 같이 산다 말했다. 그게 김록수였다.
선임도 처음에는 록수에게 정을 붙이지 못했다. 표정도 없이 대가 없는 호의를 낯설어 하던 그의 어리광 역시 수혁의 입으로 듣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그러니까… 당시엔 재난이었던 사고에 휘말린 녀석을 구조해 줬었단 말이야. 며칠을 굶은 주제에 초코바를 건네니까, 그 맹랑한 놈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 공짜냐고 묻는 거야. 자기 돈이 없다고. 내가 받는다고 그랬으면, 아마 그냥 돌려줬을걸. 주고 받는 게 확실한 녀석이야. 좋게 말하면 손해는 안 보고 살 성격이고, 나쁘게 말하면 정이 없어. 그런데 그 녀석이, 어제는 뭐라는지 알아? 뭘 믿고 그렇게 나서냐고 혼을 내니까, 날 믿고 그런다는 거야. 저가 잘못해서 뭔가 일이 잘못되더라도, 팀장이 도와줄 거잖아요. 틀려요? 그러면서 안 도와 줄 거냐고 묻는데 말문이 막히는 거야. 주워 온 고양이가 처음으로 내 옆에서 잔 느낌 같은 거 알아? 그랬다니까.'
그 말을 들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록수는 다른 사람들의 눈에 보일 정도로 변했다. 스스로의 변화를 모르는 건 록수 그 자신뿐이었다. 그와 각별했던 이수혁과 최정우에 대한 말들도 분분했다. 두 남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뮤즈가 된 소감은 어떠십니까? 농담처럼 물으면 김록수는 똥 씹은 얼굴로 고갤 내젓고 말았지만, 선임은 그게 장난이 아닌 진심임을 모르는 것 역시 김록수뿐이었다고 깊게 믿었다.
의아한 것은 바로 그 점이었다. 왜 몰랐을까? 그때의 김록수는 분명,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7.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록수는 의무실에 머무는 대신 귀가를 선택했다. 목도리를 칭칭 둘러 감고, 가져온 우산을 펼쳐 쓴다. 비닐을 두들기는 거센 빗소리가 요란했지만, 다행히 집까지는 얼마 거리가 되지 않았다.
"이사하길 잘했지?"
"이전 집도 좋았는데요."
"시간이 갈수록 내 고마움을 알 거다. 근방에 괜찮은 집 찾으려고 얼마나 발품을 팔았는지."
"압니다. 팀장이 노력했던 거요. 그만큼 날 위해줬던 것도."
수혁이 이사를 결정한 건, 록수가 그와 같은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처음 말하기로는 출퇴근이 피곤해서라고 했지만, 꽤 시간이 지나고 나선 다른 속셈이 있었다 고백했다. 네 공간을 제대로 만들어 주고 싶었어. 록수는 오랜 기억을 더듬으며 눈을 감았다. 집으로 향하는 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이 비를 피해 서둘러 안락한 공간으로 가고 싶었다. 익히 잘 아는 냄새와 온기로 채워진, 스무 살 이전의 생에는 한 번도 선사받지 못 했던 안온한 집으로.
8.
"하여튼 지금의 팀장은 이전에 한 번 모두를 잃어 봤다는 거야. 전 특수팀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가족을 한꺼번에 잃은 거나 다름없는 경험이지. 솔직히 말하자면, 그랬으면서 다시 소속팀을 새로 꾸린다는 게 제법 경이로워. 개도 한 마리 키우다 죽으면, 한동안 다른 개를 들일 생각조차 못한다잖아. 김록수는 했어. 그것도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죽은 전 팀장 자리 받아다 인수인계부터 끝냈다니까. 진짜 독한 놈이지. 그래서 어떻게 하고 사나 궁금해서 나도 지원한 거야. 그리고 그때부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기 시작한 거지. 네가 잘 아는 '이런 식'으로 말이야."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역시 PTSD가 맞는 거죠?"
"…너 팀장한테 반해서 지원한 것치고 정말 머리가 나쁘구나?"
진심으로 의아해하는 듯한 말에 신입의 얼굴이 금방 불퉁해졌다. 선임도 그를 오래 놀리지는 않았다.
"록수가 그러는 건, 너무 다정해서 그래. 태어나서 처음 사랑이 뭔지 깨달은 아이처럼 말이야. 애들은 자기 아빠가 장난으로 엄말 때리는 것도 속상해 울잖아. 그 사람도 그래. 팀장한테는 너네가 엄마 같은 거야. 전에는 한 번 다 잃어버렸으니까, 이번엔 손끝 하나 안 다쳤으면 해서. 뭐, 어디까지나 내 가정이지만."
확실한 건 그가 죽고 싶어 한다는 것만은 아냐. 많은 이야기를 가정하면서, 선임은 그것만은 확신에 차 말했다. 록수에 대한 개인적인 믿음도 있었으나, 무엇보다도 제가 아는 김록수가 이수혁의 신조를 저버릴 리가 없었다. 이것까지 말한다면 신입을 납득시키기는 더 쉬웠겠지만, 선임은 굳이 말을 더하지 않았다. 지나간 이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때론 이길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질투를 부르는 것 역시 모르지 않은 탓이었다. 이제 막 새로 들어온 신입에게 그런 건 별로 좋은 정보가 아니었다.
"그럼, 팀장님은 괜찮은 거죠? 그냥 걱정이 좀 많을 뿐이지, 정상인 게 맞죠?"
질문의 방향이 이상함을 느낀 선임이 한쪽 눈썹을 추켜세웠다. 그 시선에서 불쾌감을 읽었음에도 신입은 눈치를 살필 뿐 주눅든 얼굴이 아니었다.
"사정은 이해할 수 있어요. 다정으로 퉁치기엔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그래요, 그렇다 쳐요. 하지만, 아무리 이런 세상이라 하더라도 주변에 사람이 그렇게 많이 죽었는데 멀쩡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만일 정상이 아니라면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요!"
"본인이 거절하는데 무슨 수로?"
단박에 말문이 막힌 신입을 두고 선임이 보란 듯 웃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순수하게 그 기세가 귀엽기도 했다. 애당초 신입을 구박하기 위한 자리가 아닌 만큼, 선임은 금세 목소리를 부드럽게 했다.
"팀장은 아직 괜찮아. 무리하고 있지 않단 건 아니지만, 네가 걱정하는 만큼 위험한 정도는 아냐."
"그걸 어떻게 알아요?"
선임은 잠시 신입의 기색을 살폈다. 무엇을 가늠하는지 모를 표정으로 한참 뜸을 들이는 것을 못 참고 신입이 닦달했다. 뭔데요? 선임이 그제야 한숨처럼 답했다.
"본인이 알아서 처치하고 있으니까."
"어떻게요?"
"오늘 팀장 출근할 때 봤어?"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괴상한 얼굴을 하자 선임이 재촉했다.
"봤냐고."
"네. 뭐…, 봤죠."
"어땠어?"
"어땠긴요. 그야…, 아! 그러고 보니 아직 가을인데도 매번 목도리 하고 다니시던데, 무슨 이유가 있는 거예요? 비 소식도 없는데 우산도 챙기고. 거의 항상 그러시잖아요."
"비 오는 겨울이라 그래."
"네?"
"팀장이 추억하는 오늘 말이야."
신입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하기야 이상할 테지. 보통 사람이라면 환각이나 정신병을 의심했을 테지만, 록수는 경우가 달랐다. 김록수의 머릿속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어떤 방대한 공간이 존재했다. 록수는 그 안에 원하는 것들을 언제고 마음대로 넣고 뺄 수 있었다. 뿐만이 아니다. 보편적으로 추억은 항상성을 지니지 못한다. 뇌란 기묘한 체계를 가진 기관이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원하는 정보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남김없이 소각한다. 바란다면 무의식을 따라 그 내용을 틀어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때문에 완벽한 기억이란 존재하지 않는 거나 다름없었다. 단 한 명, 김록수만을 제외하면. 그는 스스로가 기억한 모든 것을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능력자였다.
"…설마."
"보통 사람이라면 불가능하겠지만, 팀장은 가능해. 알잖아. 바란다면 단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한 걸 다시 구현해낼 수 있단걸. 순전히 본인만이 보고, 듣고, 느꼈던 오감들을 기억 그대로 이끌어내는 것에 불과하겠지만, 원한다면 지난 추억 속을 사는 것도 가능하겠지. …말했잖아. 독종이라니까."
한 박자 늦게 안색을 달리하는 신입의 얼굴을 마주하면서도 선임은 썩 유쾌하지 못했다. 김록수는 병들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가장 합리적인 판단을 끌어낼 줄 알았다. 기획하는 작전들은 획기적이며,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타입의 리더였다.
그러나 신입의 말이 맞다. 주위의 그 많은 사람들을 한 번에 잃고서도 멀쩡한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록수는 병들어 마땅했다. 그럼에도 그는 일상을 영위하고자 했다. 상실감을 잊을 가장 행복한 순간들을 끊임없이 덧씌워 그리며 현재도 과거도 아닌 어느 시간을 살았다.
어째서?
록수는 그러지 않아도 됐다. 그토록 무리할 이유가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무엇이 그를 이렇게까지 하도록 만드는 걸까.
9.
집이었다. 창밖으론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주황빛의 따스한 햇볕이 기다랗게 방안에 들자 록수의 등 뒤로 길쭉한 그림자가 생겼다.
"왜 그렇게 서 있어?"
"…볕이 따뜻하길래요."
등 뒤에서 감싸며 저를 끌어안는 품 안에서 록수는 한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 수혁이 그의 어깨에 턱을 괴며 웃었다. 다정한 손길은 록수의 뺨을 문지르다 이내 고개를 끌어 입을 맞췄다. 이른 가을의 선선한 바람에도 감긴 몸은 옅게 들뜬 열기를 띠고 있었다. 몽롱한 감각은 그 때문일지도 몰랐다.
"밖에 예쁘지? 원래 이 자리가 전망이 이렇게 좋진 않았는데. 망할 놈의 괴수가 이렇게 딱 보기 좋은 자릴 밀어버릴 줄 누가 알았겠어. 솔직히 그땐 진짜 집 날리는 줄 알았다. 대출까지 끌어다 계약금도 걸었는데, 큰일 날 뻔했지."
"그러게요."
자잘한 웃음이 부서지는 소릴 들으며 록수가 대꾸했다. 기억 속 자신이 했던 대답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팀장은 알죠? 나 정말 백수가 하고 싶었던 거."
"멀쩡한지 확인하러 들어서는데, 그때가 딱 오늘 같은 날인 거야. 보이는 광경은 엉망진창인데 들어서는 노을빛이 방안 가득 어찌나 반짝반짝하던지. 걱정이 너무 많았던 탓일 수도 있어. 그런데 그게 유난히 예쁘더라고. 그때 생각했지. 이 방을 널 줘야겠다 하고."
"난 진짜 그러려고 했어요. 그 빌어처먹을 것들 다 해치우고 퇴사해서, 정수랑 팀장이랑 귀농하는 데에 퇴직금이나 보태다 평생 얹혀살아야지 했거든요."
맞닿은 등 뒤로 오르내리는 흉부. 끌어안아 배를 문지르다, 이내 손을 찾아 깍지를 끼는 손가락의 단단하고 투박한 마디마디의 쓸림. 섞임에도 어색하지 않은 숨결과 다정한 입맞춤. 현실을 전복시킬 만큼의 생생한 기억은 스스로가 바란 것이었으면서도 때론 저주처럼 느껴졌다. 완전히 잊어버리면 편할까. 여러 번 생각했지만, 록수는 단 한 번도 실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나 혼자 남겨질 거라고는, 정말로 상상도 못 했습니다. 그래서 이러나 봐요."
"마음에 들어?"
"그래도 팀장이랑 한 약속은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젠 나도 해피엔딩이 좋아졌거든요."
"네가 이 방에서 행복한 기억만 쌓았으면 좋겠다, 록수야. 김록수."
"그러니 칭찬해 주세요, 팀장. 잘하고 있다고요."
"네가 행복하길 바라. 진심이야."
그 말로 충분했다. 록수는 눈을 감은 채 무너지듯 창 위로 몸을 기댔다. 노을에 감싸인 지지 않는 영원의 기억 속에서 록수는 그제야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일상으로 돌아온 평온함을 느꼈다. 이곳에선 더는 끝맺지 못한 약속으로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불멸하는 기억을 거두고 모두 잊은 체 굴더라도 사무치게 그립거나 슬프지 않았고, 잃어버린 사랑에 괴롭지도 않았다. 오롯이 안식만을 위한 공간. 밤은 이제야 장막을 드리웠고, 깊어지기까지는 한참이었으나, 록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았다. 잠이 쏟아지고 있었다. 혼자여도 서럽지 않은 시간이었다.
10.
끝나지 않는 계절이 있다.
1월. 겨울이었다.
- Da capo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