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시, 논커플링, 밍나님 - 하루 중 가장 어설픈 시간을 함께 했던 그들의 이야기
@rhdqn124
"아~~~ 이게 뭡니까~~~"
부서진 건물과 괴물들의 잔해가 널린 곳에 주저앉으며 정수는 억울하게 투덜거렸다.
"오늘 만우절이었는데 다 날렸습니다~! 나름 준비했는데!"
"아직 만우절 맞지 않냐?"
"아~ 팀장님도 참~ 장난은 오전에 치고 진실은 오후에 밝히는 거라구요~"
"어이구~ 그러냐~"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뒤처리나 하지그러냐."
"흥! 록쑤는 쩡수의 마음을 몰랑!!"
"...이새끼가"
록수의 표정이 빠르게 썩어갔다.
정수는 그 생생한 반응에 신이난 듯 깔깔거리다 록수에게 한 대 맞고는 이내 뒤처리를 시작했다.
"내가 하나뿐인 동기의 만우절을 위해 좋은 것도 준비해뒀는데.."
아쉬움이 가득 느껴지는 목소리로 꿍얼거리던 정수는 순간 번뜩인 생각에 저도 모르게 얼굴 한 가득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야 너 무슨생각하길래 표정이 그러냐?"
"제가 뭘요~"
"너 지금 사고치기 직전 표정 짓고있는데."
"선배도 참! 제가 늘 사고만 친건 아니죠!"
"그래, 뭐, 사고치지 말고."
"넵!"
슬금슬금 튀어나오는 음흉한 웃음소리를 감추지 못하는 정수를 보던 선배는 이내 처리해야 할게 가득한 현장과 처참한 현장의 모습만큼 늘어나 있을 서류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고갤 돌렸다.
돌아온 사무실은 이곳저곳에서 앓는 소리가 나왔다.
"흐어어~ 우리 팀이 나갈 일 아니었잖습니까~~"
"망할 헌터놈들 지들 구역이라고 시비털 땐 언제고 이럴 땐 쏠랑 도망가선"
"그 잡놈들 언젠가 꼭 털어버린다!!!"
"잘한다!!! 우리 신입!! 그 기세야!!!"
"이 새끼들아 신입한테 이상한거 가르치지마!"
정수는 분노 가득한 외침을 끝으로 책상에 머리를 박은 록수에게 슬금슬금 다가갔다.
"록수야, 너 피곤해 보인다? 하나 먹을래?"
정수가 초콜릿 한 조각을 꺼내 록수의 입가에 들이밀었다.
록수는 익숙하게 날름 받아먹고 일어나려 했지만
"쿨럭! 최정수 이새끼가!!!!!"
"아하하하하하핳!!! 4시 1분이다!!! 1분간은 만우절!!! 카카오99%의 맛이 어떠냐!!!"
"야이새끼야!! 거기 안서?!!!"
정수는 록수가 초콜릿을 입에 넣는 순간 바로 도망쳤다.
험악한 얼굴로 뒤늦게 정수를 쫓아가는 록수와 그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이 동기 놀리기인 정수를 보던 팀장이 흐뭇한 미소로 "우리 팀이 신입을 잘 뽑았어" 중얼거리는걸 들은 팀원 한 명은 익숙하게 날아다니는 서류들 중 중요한 서류들을 주웠다.
"최정수!!!!!"
"잘못했어!!! 잘못했어 록수야!!!! 아아악!!!! 록수한테 먹을걸로 장난치는게 아니었는데!!!"
뒤늦은 후회가 살벌한 록수의 얼굴로 등 뒤를 따라왔다.
둘의 추격전을 흐뭇한 표정으로 보던 수혁은 록수의 얼굴이 열로 달아오르기 시작하자 다급하게 둘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록수 너 이런데에 능력쓰지마라. 정수 너도 록수한테 사과하고."
"아! 팀장!! 제가 피해잔데요!"
"팀장님!! 살려주세요!!!!"
"팀장!!"
"아휴, 내가 어쩌다가 이런 신입들을 주워왔는지."
팀장님 앞에 나란히 쭈구려 앉아 투닥거리는 신입 둘의 모습을 보며 팀원들은 익숙하게 날아다니는 서류들을 주웠다. 서류들이 날아다니긴 해도 물건을 부수거나 다른 팀원들의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선에서 투닥거리는 막내 둘은 선배들에게 있어서 작은 힐링이 된지 오래다.
'역시, 우리 팀 신입들이 제일 귀엽네.'
여느 때와 같은 평화로운 하루가 지나가고, 또 다시 서류가 가득한 다음 날이 찾아왔다.
"전 현장팀인데.."
"현장을 뛰는 열정으로 서류도 힘내보자고!"
"아아..."
빠져나갈 수 없는 과로의 연장선에 다들 지쳐 쳐져있을 때, 현장조사를 나갔던 팀원들이 돌아왔다.
"커피 사왔습니다."
"오~!! 역시 우리 록수가 최고다!!!"
"역시 정신계!! 커피마시고 싶은걸 어떻게 알고!!"
"그거 정신계랑은 상관없잖아요!"
"아구~ 우리 록수~ 네가 내 선배해라!!"
"됐습니다. 선배 되면 여기서 일 더 늘어나잖습니까."
"우리 록수가 어른이 되었구나!"
"하.."
한숨을 쉬면서도 씰룩이며 올라간 입꼬리는 내려오지 않았고 오후가 되어 쳐져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올라갔다.
"야, 네 커피 여깄다."
"우리 록쑤~~ 나 챙겨준고야? 하나뿐인 동기가 좋긴 좋구나~"
"됐어, 새끼야."
신나는 표정으로 커피를 쭉 들이킨 정수는 어제의 록수가 그랬던 것처럼 일그러진 표정으로 커피를 뿜어냈다.
"쿨럭! 록수.. 너..!"
"럭키세븐샷이다! 정수놈아!"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록수의 뒤편으로 4시 1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가 보였다.
"어쩐지 조용하게 넘어가 주더라니!!"
"하하하핳! 우리 정수 당했구나!"
"선배, 선배는 알고 있었죠?!"
그렁그렁한 표정으로 서럽게 물어오자 선배는 슬쩍 시선을 피하며 웃었다.
"글쎄다, 같이 카페에 가긴 했지만~ 우리 록수가 복수를 잊지 않는 귀여운 후배인걸 알고 있었지만! 글쎄다!"
"허엉~ 여기 내편은 없어!"
"그럴리가~ 짜잔!!"
선배는 숨겨져있던 헤이즐넛 커피를 꺼내들며 웃었다.
"선배!!!"
"록수가 준비 해왔지!!"
"록수야!!!"
감격한 표정으로 팔을 벌리고 록수에게 다가가자 록수는 '으~' 라는 소리를 내며 팔을 피했다.
그래봤자 어느새 정수에게 안겨있게 되었지만 말이다.
"놔라 새꺄!"
록수가 정수를 떨어뜨리기 위해 몸을 비틀었지만 그 행동이 무색하게 달랑 들려 올려졌다.
"야!"
"왜~"
여유로운 표정으로 록수를 들어 안은 정수가 강아지 같은 표정으로 눈을 맞추자 록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쉬더니 가볍게 정수의 이마를 때렸다.
"내려놔라."
"네~ 네~ 커피 잘마실께요~!"
"오냐."
팀장이 투닥이는 두 사람을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자 시선을 느낀 듯 한 록수는 예의 그 어색하게 굳은 표정으로 슬쩍 시선을 돌렸고 정수는 신난 듯 늘상의 '우리 록수 귀엽죠?!' 라고 말하는 눈동자로 눈꼬리를 접어 올렸다.
"귀여운 내 새끼들."
막내들의 장난이후 여기저기서 비슷한 장난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샷이 추가된 커피와 작은 투닥거림, 가벼운 말장난과 이어지는 웃음소리가 늘어지는 시간 속에 하나의 활력이 되어 이어졌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새로운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정수야, 오늘은 뭐 없냐?"
"팀장님, 오늘은 뭐 없습니까?"
"하.."
"하.."
"록수가 뭐 재밌는거 가져왔으면 좋겠다."
"그러게요. 지금 엄청 심심해서 무슨 장난이든 다 넘어가주고 싶은데~"
두 사람의 투덜거림에 답이라도 하듯이 싸이렌이 울렸다.
[D-7구역 A급 몬스터 3마리 출현, 그 외엔 C급 이하의 몬스터 다수. 현재 사내에 남아 있는 공격 대원들 빠른 지원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D-7구역 몬스터 출현. A급 3. C급 이하 다수. 사내에 남아 있는 공격 대원들은 빠른 지원 바랍니다.]
"제가 바란 사건은 이런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가자, 정수야."
"예~"
두 사람이 현장으로 출발하고 뒤늦게 현장으로 달려온 사람이 한 명.
그리고 그 한 사람의 뒤로 날아오는 건물파편에 몸을 던진 사람이 있다.
"팀장!!!"
"아, 새끼야 골아프게 소리 지르지 마라."
록수가 입을 열려는 순간, 다시 뻗어오는 몬스터의 공격에 다급히 록수를 들어 집어 던졌다.
날아가는 록수의 눈에 비친 수혁의 표정은 다급했고, 그런 수혁을 덮치는 몬스터의 흉측한 신체는 지독히 느려보였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빼올 수 있을 것처럼 느리게.
찰나의 시간, 하지만 길었던 그 장면이 느리게 흘러가고 떨어지는 몸이 느껴질 때 쯤, 누군가의 떨어지는 자신을 받아내었다.
"록수야!"
"팀장!!!!"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소리치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같은 모양새로 다급했다.
록수의 시선 끝에는 채 피하지 못한 팀장이 무너지는 모습이, 정수의 시선 끝에는 그런 팀장을 보며 무너져 내리는 표정의 록수가 비쳤다.
"빌어먹을...!!!"
정수는 다시 수혁을 향해 달려가려는 록수를 끌어안아 제지하고 자신이 그 곳으로 뛰어들었다.
서늘하게 빛나는 칼날이 흉측한 덩어리를 갈라 길을 만들고 사이로 쓰러진 팀장을 끌어당겨 뒤로 던졌다.
"록수야! 일단 받아!!!"
지금이라도 달려올 것 같은 록수를 제지할 겸, 정신없는 이 현장에서 팀장을 격리할 겸, 일단 집어던지는 선택을 했지만 피투성이의 축 늘어진 무게가 손안에 남아 질척이는 것 같았다.
"젠장할.."
잠시의 틈, 코앞까지 다가온 질척이는 덩어리를 베어내며 주변을 살폈다.
무너진 건물들과 이리저리 쓰러져 있는 사람들, 그 아수라장 속에서 버티고 서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상황인 만큼 다들 일단 싸우는데 집중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는게 보이는 현장. 그 사이 유난히 작아 보이는 록수가 있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차마 만지지도 못하고 품에 안긴 팀장님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에 덜컥 혹시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그럴 리가 없잖아.
주변을 베어내며 다가가자 평소와 달리 평정을 유지 못하는 동기가 보였다.
"록수야, 정신차려! 지금 네가 필요해!"
미안한 말이지만 이 상황을 정리해야 싸울 수 있었다. 그리고 끔찍한 현장 한가운데 쳐들어올 정신계는 눈앞의 동기밖에 없기에, 지금은 록수에게 맡기는 게 최선이다.
"록수야!!!"
시선이 마주치자 빠르게 평정을 찾는 암갈색 눈동자가 가라앉았다. 급하게 뜯어냈는지 너덜해진 셔츠와 빠르게 상기되는 얼굴이 주변을 살피며 눈을 빛냈다.
"최정수! 내 목소리 잘들어라!"
이제야 내가 아는 동기놈이 돌아왔다. 그래 네가 있으면 이정도 쯤이야 금방 정리하고 갈 수 있어.
“3시 방향! 위로 피해! 저놈 약점 왼쪽 위에 작은 틈이다!”
“오른쪽 아래! 땅 밑에서 뭔가 나온다!!!”
“왼쪽 아래! 움직임이 둔해졌어! 그쪽으로 쳐!!”
록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움직이자 앞에 길이 뚫린 것처럼 움직임에 막힘이 없어졌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거의 동시에 상황을 전달하는 모습은 경이로울 지경이었지만 저 모습의 뒤에 쓰러질 녀석을 생각하면 속이 쓰려오는건 어쩔 수 없다. 가능하면 나서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은 차라리 빨리 끝내고 둘 다 침대에 묶어 놓는 게 낫겠지.
터져나가는 흉측한 덩어리와 사이사이에 늘어진 익숙한 살덩어리들을 피해가며 들리는 상황에 집중해 싸우길 수분, 어느정도 상황이 정리되어 가는 중에 다른 길드 지원팀이 도착했다.
록수는 지원팀에게 상황과 적에 대한 정보를 설명하고 어떻게 싸워야할지 설명하곤 이내 쓰러졌다.
록수와 팀장을 병원으로 옮기려는 마스크를 쓴 사람의 손을 슬쩍 밀어내곤 둘을 들쳐 안았다.
"어디로 옮길까요?"
"아.. 저 후송차량에 탑승하시면 바로 병원으로 이송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저 사람에겐 미안하지만 쓰러진 두 사람을 맡기기엔 왠지 안심이 되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 두사람은 열심히 일하는 만큼 적이 많기에 쉽게 맡길 수가 없다.
피투성이지만 옅게 색색이는 숨소리를 듣고 있자니 조금 안심이 되어 두 사람을 살피자 팀장님은 역시 팀장님인지 머리에서 피 좀 나는 것을 빼곤 꽤 멀쩡한 모습이다. 오히려 록수가 그 잠깐 사이에 헬쓱해진 모양새라 절로 한숨이 나왔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과 땀에 젖은 셔츠, 무의식인지 입술을 깨무는 모습에 이 녀석을 또 무리하게 만들면 내가 사람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조금 하며 눈 위에 차가운 물에 적신 수건을 덮었다.
"..."
팀장의 이마는 지혈용 약과 거즈로, 록수의 이마와 얼굴엔 차가운 수건으로.
익숙한 얼굴 위의 흰 천들이 괜스레 가슴께를 뻐근하게 만들었다.
"거, 잘생긴 얼굴들에 뭐하는 짓인지."
덜컹이는 차안에서 힘없이 흔들리는 손을 부여잡고 숨을 참았다. 맥박이 뛰고 색색이는 숨소리에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되서, 아주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둘 다, 꼭 데리고 은퇴할테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자 옆 침대에 누워있는 팀장과 그 앞에 엎어져 자고 있는 정수가 보인다. 붕대 투성이의 팀장의 모습이 그다지 마음에 들진 않지만 일단 살았으니 병원에 있겠지.
살았으면 됐다. 일단 살아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으니까.
상황파악이 필요해 정수를 부르려는데 답지 않게 발개진 눈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저도 모르게 멈춘 채 정수를 보고 있는데 정수의 눈꺼풀이 약하게 떨리더니 이내 눈동자가 드러났다.
"야, 어떻게 됐냐."
"록수야..."
떨리는 목소리가 불안하다. 팀장은 머리를 맞아서 언제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말을 의사에게 들었다고 울듯이 말하는 정수의 표정이 어딘가 어색하다. 콧잔등을 찡그리면서 말하는 건 정수놈이 거짓말 할 때의 버릇이다. 가만히 눈을 돌려 팀장을 바라보자 표정은 완벽하지만 귀 끝이 붉다.
시간은 어느새 오후 4시. 둘이서 이런 일로 장난을 치려해?
울컥 화도 나지만 이런 시덥잖은 장난을 칠 수 있을 만큼 둘 다 멀쩡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어? 잠깐, 록수야 잘못했어. 팀장, 형, 일어나요. 눈 떠, 큰일났어!"
"정수 너 이렇게 빨리 포기.. 어? 록수야 나 완전 건강하다! 록수야!"
그냥 눈물만 조금 흘렸을 뿐인데 두 사람 다 난리다. 조금씩 후련해지는 속에 입꼬리가 떨리는 것 같아서 표정을 더 굳히자 앞의 두 사람은 아예 탭댄스라도 출 기세다.
"록수야! 나 완전 멀쩡하다! 의사가 피만 좀 많이 나고 속은 멀쩡하데!! 봐라!!!"
기세가 아니라 진짜로 일어나서 춤을 춘다... 그 웃기는 모습에 슬슬 알고 있었다고 말하려는데 이어지는 두 사람의 말에 조용히 묻어두고 모른척하기로 마음이 바뀌었다.
"록수야! 고기살께!!! 한우!!! 팀장이 쏜다!!!"
"그래 록수야!!! 형이 한우 쏜다!!"
"지금 사주십쇼."
일부러 조금 잠긴 목소리로 말하자 둘은 어느새 짐을 싸들고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얌전히 두 사람이 싸주는 쌈을 받아먹으며 행복해하고 있으려니 다시 조금 괘씸죄가 올라오려고 했지만, 입 안에 고기가 들어오자 기분이 사르르 풀렸다. 역시 고기를 먹어야 힘이 나는 법이지.
"둘도 얼른 드시죠? 저만 계속 먹이지 마시고."
흐뭇한 표정으로 계속 고기를 들이 미는 행동에 왠지 어색해서 툭 던져 봤지만 오히려 쌈 싸먹이는 속도가 더 늘어난 것 같다. 씹는 것도 힘든데 이 사람들..
"뭐야, 어중간한 회사 직원 분들 아니십니까?"
갑자기 껄렁하게 말을 거는 흔하게 생긴 놈에 뭐지 싶어 쳐다보자 비웃는 표정으로 입을 연다.
"저런 후임이 뭐가 예쁘다고 그렇게 애지중지들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까 보니까 댁이 쓰러지든 말든 일부터 열심히 하던데, 뭐, 일은 잘하는 것 같지만 사람이 일만 잘하면 뭐하겠습니까?"
"뭐 이 새끼야?"
"틀린말은 아니지 않나요? 저희 길드가 영입하는 것도 다 무시하고 그렇다고 정부 소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최선을 다해 스카웃하려는 인재 치곤, 영 인간성이 없는 거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당신들 나름대로 일을 잘하는 것 같아서 써주긴 하지만 어디에도 안 들어가고 버티면서 싸고도는 후임이 어떤 사람인지 좀 궁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 않나요?"
저런 시덥잖은 말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는 없다. 말 그대로 저 길드에서도 스카웃 제의가 들어왔지만 전부 팀장 선에서 처리 됐던 일들이며, 이래저래 원하는 대로 안 풀리자 괜히 와서 시비 터는 것 뿐 이니까.
오히려 가소롭기까지 해서 비웃으려는데 그 놈의 멱살을 잡고 살벌한 얼굴을 한 정수놈과 옆에서 정수를 말리는 척 하며 살벌하게 비즈니스 미소를 짓는 팀장이 있다. 아, 이 인간들 다혈질이었지.
"정수야 놔줘라, 저 놈 열심히 비아냥거리지만 아까 싸움터에서 구석에 쳐박혀서 울던 놈이야."
"네가 뭔데! 어디서 그런!"
"궁금하시다니 알려드리지만 제가 정신계라서요. 싸우는 사람들 뒤로 숨어서 엉엉 울고 있던 얼굴이 엄청 선명한데, 기념으로 그림이라도 그려드릴까?"
시뻘개진 얼굴로 바락거리는 놈이었지만 창피한 줄 아는 주변인이 수습해서 데리고 가고, 같이 씩씩거리는 정수와 표정으로 티는 안내지만 제대로 토라져 있는 팀장을 달래야 할 것 같다.
"록수 너는! 정말! 이 형은 너를 그렇게 키우지 않았다!"
"아니, 왜 갑자기 내가 뭘요."
"맞다 록수야!!! 너도 시원하게 화를 내야지! 저런 어중간한 겁쟁이 놈은 아주 묵사발을 만들어야!!!"
"정수 너도 진정 좀 해라. 어차피 갔잖아."
"걱정마라 록수야. 이 형님이 저놈 조용히 조져줄께."
"정수야, 같이 하자. 내가 머리 너는 몸이 되는 거다."
"허... 괜한 일 벌리지 마시죠. 어차피 둘 다 무사히 제 옆에 있으니까요. 굳이 신경 쓸 필요도 없잖습니까. 거, 앞에 고기나 주시죠. 타겠습니다."
"록수야!"
"김록수 너!"
"뭐야, 왜이래. 고기나 더 달라니까요?"
"우리 록수, 다 먹어! 후식도 쏜다!!!"
"오! 그럼 자바칩 프라푸치노 사다주십쇼."
식사 후, 사오라는 록수를 끌고 아기자기한 카페에 들어갔다. 단걸 좋아하는 녀석인데 다른 사람들이 겁먹는다고 카페에 자주 가지도 않고, 그렇다고 잘 나다니는 것도 아니라 다른 팀원들이나 정수녀석은 어딜가든 록수를 데리고 다닌다. 아닌 척 하지만 즐거워하는 게 보이는 녀석이라 보람도 있고, 귀엽고 아기자기한 공간에 록수를 놔두면 어색해 하는 게 즐겁다. 햄스터처럼 우물거리는 록수를 보고 있으려니 이제야 좀 안심이 된다. 눈 뜨자마자 보인 게 울고 있는 록수라니 일생에 다시 없을 잘못을 한 것 같아 일단 급하게 달래려고 한 말들인데 이렇게 잘 먹힐 줄이야. 역시 고기는 옳아. 내 새끼 네가 단순해서 좋다.
그건 그렇고 아까 그 새끼 털어버려야 하는데, 우리 록수가 얼마나 맘이 여린데!
"팀장, 아까 그 놈."
"어?! 아니 아무 짓도 안할건데?! 진짜야!!"
괜히 찔려서 큰소리가 나와버렸다. 임무 땐 표정관리 정도는 여유롭게 되는데 어째 이놈들 앞에선 관리가 잘 안 되는 것 같다.
"아무 짓도 안하면 안 되는데요."
"응?"
"그 길드 제가 벼르고 있었거든요. 길드 내 비리 제가 싹 털어놨습니다. 팀장, 일 좀 하시죠?"
"장하다 내 새끼!"
어쩜 저리 귀여운지.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어디부터 어떻게 터는 게 좋을지 설명하는 눈빛이 즐거워 보여 같이 신나게 듣는데 듣다보니까 점점...
옆의 정수 표정도 처음엔 신나 보이더니 점점 굳어간다. 저 놈 나랑 같은 생각 하는 것 같은데..
"록수야, 너 그거 언제 조사했냐?"
"록수 너.. 하나뿐인 동기에게 의지하지 않고 혼자 뭘 하고 있던 거야"
"아니.. 뭐.. 일단 이쪽을 한번 털어야 나중에 일이 더 편해질 것 같아서.."
"록수 넌 이제 쉬어라."
"맞아 록수야, 팀장님 말 들어."
"아니, 내가 같이 안하면 누가 해?"
"나랑 팀장님."
"팀장 명령이다~ 얌전히 네 몸이나 챙겨라"
궁시렁 거리는 모양새가 또 말 안들을 모양새지만, 이번엔 정말 넘어가지 말아야지. 우리가 일이 적은 것도 아니고 이놈이 얌전히 후방에서만 있었던 것도 아닌데 거길 여기까지 조사해놨다고? 혼자서? 말도 없이? 그 기록인지 뭔지 능력은 정말 대단하지만, 그 능력 때문에 오히려 이곳저곳에서 탐내고 있어서 조용히 숨겨두려고 내가 얼마나 사방을 털었는데! 록수 녀석! 말 안 들어! 하지만 기특해!
더 이상 록수가 손 댈 일 없게 정수랑 둘이서 조용히 처리해야겠다. 정수 저 놈도 사실 머리 꽤 좋은데, 록수 앞에만 있으면 단순한 바보처럼 변하는게 저 놈 나름의 어리광인가 싶다. 역시 아직 어린 녀석들, 어른인 내가 챙겨야지.
그 길드는 각종 비리와 인권문제로 확실하게 사라졌다. 그래봤자 어딘가로 흩어져 다시 썩어빠진 녀석들이 모이겠지만 당장은 조지려던 놈들을 확실하게 조진 것에 즐거워하기로 했다. 털어올 것도 다 털어와서 잔고도 정보도 꽤 넉넉해졌고, 역시 내 새끼들 잘 크고 있다.
"록수야!! 뉴스 봤냐? 그 놈들 아주 작살이 났더라!!"
"그래."
담담한 척 말하지만 록수의 입꼬리는 이미 격렬하게 씰룩이고 있는 것이 아주 기분이 좋아보였다. 확실히 여기서 하는 일이 저렇게 잘 풀린 적이 얼마 없어서인지 더 후련하고 즐거워 보인다.
"록수 너 신거 잘 못먹지? 짠!! 사과주스!! 어때? 맛있어?"
"야, 일단 마시고 물어봐라."
"맛있지?! 나중에 내가 과수원 차리면 사과주스에 사과파이에 사과잼도 해준다!!!"
즐거워 보이는 막내 둘의 대화에 슬금슬금 다가오던 팀장이 보였다.
"팀장은 뭐 안주십니까?"
"뭐 맡겨놨냐?"
"팀장님은 농부하신다면서요~! 뭐 키우실거에요?"
"글쎄다..? 딸기? 록수 너 딸기 좋아하지? 농부 되면 딸기로 탑을 쌓아주지."
"아~ 형! 록수는 사과를 더 좋아해요!"
"정수야, 록수는 딸기를 더 좋아한다."
"록수야?!"
"록수야!!"
"둘 다 좋아하는데요."
시덥잖은 경쟁에 작게 웃음이 터졌다. 저 둘은 일이 끝나면 할 일을 말하면서 꼭 나를 데려가려고 한다. 귀찮지만 어쩔 수 없지. 백수는 거기서 해야 될 것 같다.
"나중에 팀장님이 딸기농장 내가 사과나무로 과수원 차리면 그 사이에 너도 뭐 하나 해라!!"
"나는 백수할거야 새끼야."
"너 하는 거 보면 백수는 절대 못해, 목장이나 하나 하는 게 어떠냐? 고양이도 키우고 강아지도 키우고"
"팀장님~ 그게 무슨 목장입니까?"
시원하게 웃은 정수가 이내 생각하더니 다시 신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꽤 괜찮다! 일 끝나면 다 같이 그렇게 살자!!"
"뭐, 나쁘진 않네. 근데 나 동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웃기지마라, 저번에 회사 뒤편의 길냥이들 주려고 간식 사갔는데 간식만 먹고 다 너한테 가던데!"
정수의 한 맺힌 외침에 수혁이 동의하며 말을 얹었다.
"록수 너만 나타났다 하면 다 너한테 몰리잖아. 인간츄르같으니."
"거, 밥만 조금 줘서 그러는거에요. 저 동물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근데 왜, 츄르는 내가 들고 있는데.. 다 너한테 가는데..."
"포기해라 정수야, 저 놈은 못 이겨."
울먹이며 토로하는 정수를 토탁이며 옆에서 같이 록수에게 밀려난 슬픈 이야기를 풀어놓는 수혁의 모습에 록수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그래, 딱 이렇게 일하면서 일 끝내면 꼭 느긋하게 백수나 해야지. 내 사람들 옆에 끼고 맛있는거나 먹으면서 느긋하게 살아야지.
하루에 몇 번씩 하는 다짐을 되새기며 사과주스를 마셨다.
"달다."
제일 좋아하는 단 맛은 역시 사과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