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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시, 논커플링, 비올님 - 3시의 환상

@beol317

 

옛날부터 잘 안 갔던 장소들이 있다.

영화관, 놀이공원, 동물원 등등 딱 봐도 행복이 넘치는 듯한 장소들. 어릴 때부터 나는 그곳과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색했으니까. 주변에서 너는 외부인이라 말하는듯했으니까.

 

그래서 안 갔다. 성인이 되고 이런 세계가 된 이후로는 가긴 갔지만 다 폐허가 된 이후였다.

 

“....그래서 이게 뭐라고요.”

 

그러니 지금 이 상황은 어이가 없다 못해 우주로 날아간 듯했다.

제 앞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는 저 두 사람을 때리고 싶을 정도로.

 

***

 

평화로운 듯한 날이었다.

밖은 더할 나위 없이 평온했고, 자신의 서류가 외롭지 말라고 계속해서 쌓이는 것이, 평화였다. 조금 귀찮았지만 어차피 자신밖에 하지 못하는 일이었기에 불만은 딱히 없었다. 괜히 다른 사람 시켰다가 야근으로 생명 깎을 일 있나.

그렇게 묵묵하게 일을 하고 있다가 문득 시계를 보니 점심때가 지나고 있었다. 점심 먹고 좀 쉬기 시작하는, 나른하고 활동하기 시작하는, 흔히 말하는 놀러 다니거나 여유롭게 쉬기 좋은 시간이었다. 사무실에는 저밖에 없었으니 다들 어디로 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땡땡이치며 쉬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서류와 함께하던 제 평화를 깨트린 것은 맑디맑은 문의 종소리와 팀장의 목소리였다.

 

“록수야, 오늘 더 할 일 있냐?”

“...일이야 늘 넘치는데요.”

“그래 그럼 나중에 하면 되겠네. 우리 어디 좀 갈까?”

“일 많다고 3초 전에 말했는데요.”

 

생각해보니 이때 이상함을 느끼고 도망쳤어야 했다. 팀장과 계속해서 일이 많네, 나중에 하면 되네 하며 무의미한 대화가 계속 오갔다. 그러다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더니 이상한 선글라스를 끼고 온 정수가 다가왔다. 그리고 기억이 끊겼다.

 

***

 

“.....하아..”

 

인생은 살면서 늘 행복한 일만 있을 수는 없다고 한다. 살면서 크게 힘든 일이 있기도 하고 작게 힘든 일이 있기도 하다. 큰 행복이 있으면 작은 행복도 있고.

그래서 던전이 터지고 자신에게 많은 일이 있었지만, 그럴 수 있지 하고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김록수는 오늘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날이 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야 록수야, 표정이 그게 뭐냐~ 표정 풀어 얌마!”

“그렇지 그렇지. 정수가 뭘 좀 알아.”

“지금 내가 표정 풀게 생겼냐.”

 

미칠 것 같았다. 이상한 선글라스와 커다란 왕리본 머리띠를 한 하나뿐인 동기 정수가 솜사탕을 흔들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큼지막한 토끼 귀 머리띠를 쓴 팀장이란 사람이 슬러쉬를 들고 걷고 있었다. 저에게는 웬 빨간 고양이 머리띠와 엄청 긴 아이스크림을 쥐여준 데다 사진까지 찍고 있었다.

 

“그래서, 왜 갑자기 놀이공원에 끌고 온 건데요.”

 

미친 듯한 동기와 팀장이 저를 끌고 온 것은 최근 개장한 놀이공원이었다. 티비를 틀면 꿈과 사랑이 흘러넘치는 화면에 경쾌한 배경음이 계속해서 흘러나왔기에 기억을 못 할 수도 없는 광고였다. 근데 자신과는 절대 관계없는 곳이라 생각했던 그 장소에 지금 서있으니 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아니었다. 아니 돌아갈 리가 없었다.

 

“응? 놀이공원에 왜 왔냐니, 놀러 왔지!”

 

와. 진짜 때리고 싶다. 김록수는 아까부터 계속하던 그 생각을 다시 한번 속으로 강렬하게 외쳤다. 그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뿌듯해하고 있는 저 팀장도 한대 치고 싶었다.

그러다 이 상황을 어이없어하며 표정이 썩어가고 있는 걸 느꼈는지 정수가 쭈뼛거리며 다가온다.

 

“아니 뭐... 너가 요즘 일 때문에 머리 식힐 일이 없어 보여서! 그래서 그냥 기분전환 겸 데려온 거지~.”

“그냥 무료 쿠폰이 생겼는데 우리 말곤 친구 없대”

“아 팀장님 그걸 말하면 제 감동적인 동료애 스토리가...!”

“그딴 거 처음부터 없었거든..”

 

하아.

이제야 상황 파악이 돼가는 느낌에 한숨이 절로 나온다. 예전에 한번 장난삼아 응모를 한 이벤트가 있었는데 그 이벤트가 이 놀이공원이었고, 확인이 늦어서 이제야 보니 그 날짜가 오늘까지여서 이 사태가 발생한 거란다.

 

“그럼 난 갈 테니 팀장님이랑 둘이 재밌게 놀다 오든가.”

“이런 칙칙한 사내가 둘이서 뭘 하겠냐?”

“셋이나 둘이나 뭐가 다릅니까?”

“주변 시선은 안 다르지만 우리의 재미는 달라지지.”

 

뿌듯해하지 마 이 사태의 원인아.

 

절로 한숨이 나오지만 계속 한자리에 서서 있다 보니 주변에서 슬슬 이상하게 보는 듯했다. 너무 심하게 건장한 남성 세명이 길 한가운데에 떡하니 있으니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듯한 목소리도 들린다.

 

“일단 자리 좀 옮기죠.”

“도망칠 거야?”

“도망칠 거냐?”

“아씨, 안 갈 테니까 이 시선 좀 벗어나자고 이 사고뭉치들아.”

 

벌써부터 눈앞이 캄캄해졌다.

 

***

 

“재밌어 록수야?”

“재밌어 보입니까, 망할 동기님?”

“어 완전.”

 

때릴까. 한 대만 쳐도 괜찮지 않을까. 내 힘으로는 안 아플 수도 있으니 두 대 쳐도 될 것 같은데.

일단 길에서 벗어나자고 했더니 이 망할 사람들이 저거 재밌어 보인다며 회전컵에 줄을 섰다. 쪽팔려서 뒤통수를 치고 도망가려 생각하고 있었더니 아무 짓도 못하게 내 양옆에 팔을 붙잡고 딱 버티고 있다. 짜증나는 능력자들....

 

“야야 저거 돌아가는 거 봐. 저 초딩들 제법인데? 운동부에서 스카웃해가야겠다.”

“흠 힘에서 우리가 질 수야 없지. 준비됐나 제군들.”

“초딩이 대결 상대인데 안 쪽팔립니까?”

 

바로 앞에 있던 초등학생 무리가 어마 무시한 속도로 회전컵을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걸 본 정수와 팀장이 질 수 없다며 비장하게 회전컵을 돌리는 생각을 해대고 있었다.

 

김록수는 반쯤 포기한 상태로 그냥 이 둘의 기분에 맞춰주기로 스스로 타협한 상태였지만, 그 다짐이 3분도 채 못가 돌아가고 싶다만 속으로 수십 번을 외치고 있었다.

 

행복해 보이는 놀이공원, 즐겁게 웃는 사람들. 여기서 만약 사건이 터진다면 어떻게 사람들을 대피시킬지, 어떤 식으로 방어하고 어떤 공격을 해야 최대한 피해가 덜 생길지. 김록수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시뮬레이션을 했다. 초조하지만 태연하게, 불안하지만 무심한 척을 하며.

 

“이놈자식 또 일 생각 하는구나.”

 

계속해서 이어질 것만 같던 그 생각은, 팀장의 한마디가 들리자 그제서야 멈추었다.

 

“아닌데요. 그냥 하늘 보며 멍 때리고 있었어요.”

“거짓말하지 마. 눈이 딱 전투 상황에 있던 눈이던데.”

 

눈치 하난 드럽게 빠르네.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는지 팀장은 록수의 가볍게 다리를 찼다. 가볍게 차려고 했지만 그렇지 않은 그 충격에 잠시 멈칫했지만, 멀쩡한 척했다. 아파하면 또 허약하다고, 그러니까 뒤에만 있으라고 잔소리할 테니까.

 

그렇게 투닥거리는 사이 회전컵의 입장 시간이 되어버렸다.

 

“좋았으! 드디어 우리의 시간이 되었구만!!”

“제발 신이시여 저를 여기서 탈출시켜주세요.”

 

그다음은 뻔했다. 최정수가 신나가지고 회전컵을 이상하리만큼 미친 듯이 돌리다가 약간의 태풍 비스무리한게 생기길래 바로 그놈 팔을 위로 올렸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과한 후 그 장소를 빠져나왔다.

 

“이 미친놈아 재밌냐? 재밌어?!”

“어. 진짜 완전 짱 재밌다. 한 번만 더 타자.”

“돌았나 봐 진짜.”

“뭐 어때. 큰일은 없었잖어.”

“팀장님은 왜 안 했어요?? 진짜 재밌었는데!!”

“정수 네가 사고 칠 것 같았고 록수가 수습할 것 같았거든.”

 

한마디로 이 사달이 날 건 알았지만 재밌어서 지켜봤단다. 진짜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멍 때리고 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이 망할 놈의 동기가 또 사라져있었다.

 

“뭐야 최정수 어디 갔어요? 팀장님이랑 얘기하고 있던 거 아니에요?”

“엥 아니 방금 먹을 거 사 오겠다고 어디 갔는데?”

 

팀장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한 방향에는 망할 동기가 세상 행복한 표정을 하고서는 커다란 생쥐캐릭터의 팝콘통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큼지막한 리본을 단 캐릭터와 왕리본 머리띠를 한 최정수가 웃길 만큼 닮아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달려온 정수는 팝콘통을 의기양양하게 보여주며 자랑스레 말했다.

 

“야 이거 봐라! 진짜 귀엽지 않냐? 이 캐릭터팝콘 여기서밖에 안 파는 거래!!”

 

흥분한 정수가 캐릭터의 입이 열린다며 뚜껑을 열고 닫고를 반복했다. 이렇게 즐거워 보이니, 뭐라 할 마음도 없어져 버려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보고 있었다. 이제 다음은 뭐 탈까. 팀장이 정수 목에 걸린 팝콘통의 팝콘을 주섬주섬 먹으며 어디로 갈지 물었다. 정수는 아직 탈 게 많으니까 효율적이게 움직이자며 지도를 펼쳤다. 그러다가 무언가를 본 듯 눈을 반짝이더니 지도를 제 눈앞에 펼치며 말했다.

 

“우리 이번엔 여기 가자!! 여기!!!”

 

***

 

“....귀신의 집이네.”

 

정수가 그렇게도 오고 싶어 하고 바라던 곳은 다름 아닌 귀신의 집이었다. 이 놀이공원의 명물 중 하나라며 침 튀기도록 그 무서움을 얘기하던 정수는 막상 도착하니 긴장한 기색이었다.

 

“..무서운 거 좋아한다며.”

“어?! 어어 좋아해!! 조..좋아하는데 왜?!”

 

거짓말.

엄청 눈에 띄게 당황해놓고서는, 안 무섭다고, 오히려 좋아한다고 큰소리 떵떵 친다.

 

“...그치만 우리 하나뿐인 동기가 무섭다면 내가 특별히 다음에 가는 걸로.”

“표 끊어왔다. 들어가자.”

 

정수의 눈물 나는 동기 배려는 팀장의 부지런함으로 미뤄지고 말았다.

 

“으..으으아..으아아악!!!!”

“최정수 제발 얌전히 좀 있어!!!!”

 

취소. 그냥 미루지 말걸. 역시 일은 미루면 안 된다.

정확히 5분. 5분 만에 최정수는 귀신의 집 안에 있던 소품으로 귀신 분장을 한 스텝을 때릴뻔했다.

 

“내려놔 그것 좀!!”

“저리가아아악!!!”

“하하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지나갈게요. 하하.”

 

팀장은 말리진 않았지만, 정수가 자기도 모르게 친 소품이 쓰러질 때 다치는 사람이 없도록 치우고 다녔다.

얼마나 쓰러트렸는지 처녀귀신이 있던 곳은 가구가 반쯤 부서졌고, 벽에 장식된 해골들은 다 가루가 돼 있으며, 귀신이 쫓아온다고 때릴 뻔한 걸 필사적으로 막기도 했다.

 

“아 최정수, 머리!! 그거 내 머리야 이 자식아!!”

“저리 물럿거라 이 귀신아!!”

“너 이 새끼, 알고 하는 거구만?! 안 놔??”

 

제가 최선을 다해 정수 놈을 붙잡고(붙잡힌 건지 붙잡은 건지 구별은 안 되었지만) 중도 포기 신호를 열렬하게 보내자 바깥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이 왔다.

 

“너 이 색..”

“하하... 우리 록수, 머리가 까치집이네...?”

“너 때문이잖아... 죽을래..?”

 

나오자마자 정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그냥 들어가지 말걸. 한창 멱살을 잡고 짤짤 털고 있을 때, 팀장이 돌아왔다.

 

“관계자분께 사과드리고 배상해드리고 왔다. 최정수 월급에서 깔 테니까 그렇게 알아.”

“윽... 네...”

 

지은 죄가 있기에 가만히 있는 정수 놈을 보니 남아있던 진이 다 빠져버렸다. 밥이나 먹자며 정수 놈이 쭈뼛쭈뼛 말했다. 방금 산 이 팝콘통 파는 데 근처에 식당가가 있었다며(정작 팝콘통에는 팝콘들이 다 날아가서 없었지만) 후다닥 앞장서는 꼴이 좀 웃겨서 돈은 당연히 니가 내는 거지? 하며 걷기 시작했다.

밥을 먹을 생각에 신난 정수와 우리를 막은 건 귀여운 꼬마였다.

 

“아저씨 그 팝콘통 내꺼 아니에요??”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와 아래를 쳐다보니, 웬 조그마한 여자아이 하나가 정수 목에 걸린 팝콘통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혼자인 듯한 그 아이를 보자마자 어디서 봤는지 기억하려 했지만, 아이의 인상이 흐릿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팀장은 그 즉시 주변을 살폈고, 정수는 몸을 숙여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너도 이 팝콘통 있니? 이거 귀엽지?”

“네!! 어, 근데 그거 내꺼 아니에요??내꺼랑 똑같이 생겼는데?”

“이건 아저씨 팝콘통인걸? 우리 꼬마 친구는 팝콘통을 어디에 뒀을까~? 아저씨랑 이 팝콘통이랑 같이 찾아볼까?”

 

정수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아이에게 최대한 차분하게 말했다. 섣불리 누구냐며 부모님은 어디 계시냐고 물으면 울음이 터져버려 대화가 쉽지 않아 가족을 찾기 어려울 테니까.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얼굴이 아이에겐 그닥 호감형은 아니기에 대화에 모든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다. 팀장은 한참을 두리번거리다가 아이에게 안 들리도록 작게 말했다.

 

“아이를 찾는듯한 낌새의 부모는 없어. 아무래도 좀 멀리 떨어진 미아 같은데. 아직 방송은 나오지 않았으니 이 근처에 있을 것 같았는데 말이야.”

“미아보호센터에 가면 부모가 있지 않을까요? 아니면 센터에 가는 중일 수도 있고. 괜히 저희가 찾아주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면 납치한다고 생각할걸요.”

 

커다란 덩치의 남성 셋이 조그마한 여자애를 데리고 돌아다니면 오해할 게 뻔했다. 사실 외관은 주렁주렁 뭘 달고 있거나 머리띠를 하고 있으니 완전 위험하다고 여기진 않으리라 생각했다. 캐릭터 팝콘통을 저렇게 메고 다니는 녀석이 있으니까 엄청 수상하게 여기지는...않겠지..?

 

“정수야.”

 

미아 데려다주러 가자.

팀장이 정수에게 말하자, 정수는 아이에게 웃으며 엄마 찾으러 갈까? 하며 아이의 손을 잡고 움직였다.

 

“미아보호센터는 여기서 멀지 않았으니까 어쩌면 가는 길에 만날 수도 있을 거에요.”

“길 기억해?”

“제가 누군데요.”

 

그렇게 삼인방의 미아보호가 시작되었다. 사실 딱히 무언가를 할 필요 없었다. 아이가 계속 조잘거리며 다양한 이야기를 했으니까. 자신의 이름은 미르라고 한다고, 미르는 용이라는 뜻이라 자기 이름이 너무 좋다고. 오늘도 부모님이 검은 용의 풍선을 사줬다고 자랑했다. 아이와 이야기하는 것은 정수뿐이었지만 팀장도 계속해서 아이의 얘기를 들어주고 있었고, 저는 그 상황이 머릿속에 새겨지는 게 나쁘지 않아 계속 지켜보았다.

그렇게 얘기하다가 아이가 갑자기 환하게 웃으며 어딘가를 가리켰고, 그 곳에는 미아보호센터와 한 부부가 식겁해있었다.

 

“미르야!!”

“엄마! 아빠! 내 용 친구도 있네!!”

 

많이 무서웠는지 얼굴이 하얗게 된 아이의 엄마와 식은땀을 흘리며 풍선을 쥐고 아이 아빠가 달려오고 있었다. 아이 아빠의 표정이 조금 심각해 보이는 게, 아무래도 저희들이 아이를 납치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들 대체..!”

“아이 부모님 맞으시죠? 팝콘 파는 곳 근처에서 돌아다니고 있길래 미아인 듯해서 센터에 맡기려 했거든요.”

 

팀장이 재빠르게 부모에게 상황설명을 하며 충돌을 막고자 했다. 덕분에 아이의 부모는 살짝 당황하다가 아이를 안고서는 주춤거리다가 오해해서 죄송했다며, 아이를 찾아주어 감사하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잘가 씩씩한 미르~.”

“아저씨들도 안녕~!”

 

아이가 해맑게 인사하며 돌아서니 진이 다 빠진듯한 정수가 뭐 좀 먹을까...?하며 멋쩍게 웃었다. 아이와 대화 하는 일이 힘들긴 했나 보다.

뭔가 많은 일을 했고, 정신도 없었는데 고작 3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밥 먹기엔 애매했지만, 금세 배고파져서 뭘 먹기로 하며 식당가로 이동했다.

 

식당가까지 가는 길은 어느 정도 거리가 있어, 걸으면서 대화가 많이 오갔다. 정수가 얼마 전에 발견한 맛집, 팀장이 물건을 샀는데 잘못 배송돼서 배송사랑 싸운 이야기, 새로 시작한 어린이 애니메이션이 생각보다 재밌었다 등등. 시시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소소한 재미가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이런 대화의 분위기들이 오랜만이라 어색했다. 방금까지 놀이기구를 탄 것도, 귀신의 집에 간 것도, 미아 부모 찾기를 했던 것도, 마치 꿈만 같았다.

 

꿈, 이라.

정말 꿈만 같았다. 오늘 일어났던, 일어나고 있는 이 상황이. 자신은 계속해서 회색빛의 배경만을 뒤에 뒀다고 생각해왔는데, 지금 제 뒤에 있는 배경은 다채로운 색인 것이 믿기지않았다. 사람들은 울지 않고 웃었으며, 건물들은 망가지지 않고 빛나고 있었다. 이런 여유가 어색했고, 숨 막혔다. 정말로 꿈인 마냥 두리뭉실한 기분까지 들자, 여기가 어딘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록수야. 무슨 생각 하냐?”

 

자신이 다른 생각을 하는 걸 눈치챈 정수가 말을 걸어오니까, 그제서야 생각에서 벗어났다.

 

“아... 그냥 메뉴 생각 좀.”

“...이 장소, 네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라도 했냐.”

 

가만히 지켜보던 팀장이 아무렇지 않게 정답을 맞췄다. 예전부터 부하들의 시시콜콜한 퀴즈 같은 건 잘 맞추지도 못하고 맞추지도 않으면서, 이럴 땐 귀신같다. 진실을 확인하고자 하는 저 표정들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아닌데요.”

 

거짓말.

 

“밥이나 먹죠. 시간이 시간이니, 사람은 거의 없을 거에요.”

 

진실.

 

“배고픕니다. 빨리 가서 밥먹고 다른 거 타며 재밌게 놀아야죠.”

 

이건... 진실과 거짓말.

 

계속해서 제 생각을 읽는 듯이 지켜보던 둘이, 입을 열었다.

 

“록수야.”

“김록수.”

 

저를 부르는 그 목소리가, 왜 오늘따라 어색한지.

 

“회전목마나 타러 갈까?”

“오, 저도 그 생각했는데. 역시 팀장님이야.”

 

그렇게 가시밭에 서 있는 것 같던 공기는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

 

“....왜 하필 회전목마입니까...”

 

놀이공원의 꽃이라 불리는 회전목마는 그 이름값을 다 하려는 마냥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제일 화려하고, 동심이 넘치는. 그러니 이 덩치 큰 사내들이 왔을 때 이상하지 않을 리 없는 장소였다.

 

“진짜 궁금해서 그러는데, 롤러코스터 같은 놀이기구는 안타? 그런 거부터 탈 줄 알았는데.”

“야 넌 롤러코스터가 타고 싶냐? 맨날 높은 데서 떨어지고 빠르게 던져지고 그러는데.”

 

아, 그래서였냐.

 

“그런 건 하도 해서 쾌감도 아니야. 차라리 난 이런 평화로운 게 좋다고. 그쵸 팀장?”

“그치. 얼마나 좋냐, 이 여유로움.”

 

그냥 쪽팔린 데. 사람이 적어서 가뜩이나 눈에 띄는데 하얗고 멋진 말을 고르겠다며 돌아다니는 이 둘이 웃기고 어이없기도 했다.

 

겨우 말을 하나씩 잡고 돌아가기 시작하자, 정수가 신났는지 눈을 빛내며 사진을 찍어댔다. 팀장이랑 저를 막 찍어댔고, 회전목마 자체의 사진도 찍어댔다. 반짝이는 불빛들, 행복한 사람들의 미소. 움직이는 그 찰나의 순간을, 온전히 담기지도 않는 그 장면들을, 마치 잊지 않으려는 것처럼.

 

“록수야 내가 왜 사진을 이렇게 찍어대는지 아냐.”

 

제 머릿속의 생각에 대답하듯이 정수가 말을 이어갔다.

 

“행복하니까.”

 

정수는 웃으며 저를 쳐다보았다.

 

“난 지금 무지 행복하니까. 그게 이상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서 사진으로 남기는 거야. 봐! 이렇게 밝고 다들 웃고 있으니까, 우린 이때 행복했던 게 당연한 거라고 증명하는 게 이 사진들이 되는 거라고.”

“...왜 그런 얘기를 나한테 얘기하는 거야?”

“너니까 하는 거다.”

 

옆에 조용히 듣기만 하던 팀장도 입을 뗐다.

 

“아까부터 이상하게 다른 생각만 하던데, 너.”

“맞아, 거짓말도 하고!!”

“...그건.”

“록수야”

 

팀장과 정수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왜지. 왜 이렇게 멀게만 느껴지는 걸까. 바로 앞에 있는 내 사람들인데 대체-.

 

“우리가 진짜 아무 생각 없이 널 여기로 데려온 것 같냐? 너 요즘 자꾸 어디 나사 하나 빠진 것 같고, 점점 더 애가 피폐해지는 것 같아서 기분전환 시키려고 데려온거야.”

 

그런 의도면 완전 실패인데.

 

“맞아. 너 자꾸 나락으로 가는 느낌 든다고. 좀 웃고 재밌게 놀고, 좀 그래라!”

 

그래서 놀게 하려고 데려온 거라고? 네가 더 신나 보이던데.

 

“록수야.”

 

팀장이, 날 쳐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넌 너를 너무 동화책에 나오는 시민 1로만 생각하는 것 같아. 보통은 주인공을 생각하는데 말야.

 

주인공이 되는데, 꼭 자격이 필요한 건 아니야, 그러니까.

 

록수야, 행복해도 돼.”

 

그럴 리가. 나는 그럴 자격 따위-.

 

“너는 그래도 되는 사람이야.”

 

너는 주인공이 돼도, 괜찮은 사람이야.

 

....

 

할 말이 없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이 위로 같지 않은 위로들이, 이 어색한 말들이, 가슴에 새겨졌다.

어째서일까.

늘 밝거나 활기찼던 그들이, 오늘따라 저를 위해 행동하고 저의 기분과 생각을 기막히게 알아채는 건.

 

계속해서 듣고 싶던 말을 해주는데, 왜 '그때'의 기억과 다른 걸까.

그때는 이런 대화도 하지 않았고, 그냥 웃기만 했잖아. 왜 이제 와서 날 위로하고 다독이는 거야?

왜.

이제 와서.

 

흐릿해졌다. 두 사람이 잘 안 보이는 것은 자신의 눈물 때문인지, 혹은 다른 이유인지 구별이 안 갔다.

 

아니, 사실 알고 있었다.

 

왜 보지도 않던 광고가 오늘따라 생각이 났는지.

어떻게 그렇게 빨리 놀이공원에 왔는지.

어떤 놀이기구도 그렇게 금방 탈 수 있었는지.

자신들이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이 왜 뚜렷하지 않고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지.

오늘, 종일 시계가 왜 3시에 멈춰있었는지.

 

왜냐하면 그때가.

 

“...가장 행복했었구나.”

 

흐릿해지던 인상들은, 어느덧, 사라졌다.

 

***

 

“팀장님! 김팀장님!!”

 

김록수는 눈을 떴다. 자신을 부르는 부하의 목소리에.

 

무너진 회전목마 위에, 자신은 쓰러져있었다.

 

‘맞아. 지원요청이 들어와서 왔다가 괴물의 공격에 날아가서...’

 

어딘가 나사 하나 빠진 듯이 멍했다. 방금까지 제 곁에 있던 동기도, 팀장도, 제 곁에 있지 않았다. 제 곁에 있는 것은 오직, 그 둘이 탔던 회전목마들의 말뿐이었다.

 

그 대화들이, 어디까지가 현실이었고, 어디까지가 제 망상인지는 왠지 모르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그 대화의 경계선만 흐릿하게 남았다.

 

고개를 들었다. 밝게 빛나던 놀이공원은 무너졌고, 정수가 사진으로 남겼던 그 풍경들은 모두 회색빛으로 물들고 말았다. 아직까지도 들고 다니는 그 사진에는 환하게 웃는 저와 그 둘이 있었지만, 지금은.

 

“....아직도, 3시네.”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이지만, 같은 사람들만이 없었다.

 

김록수는,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없는 동화에 주인공이 되어봤자, 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3시의 즐거움이 다시 생긴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는다.

 

-Fine-

오후창   오전오후창

첫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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