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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시, 팀장록수, 단야님, 네임버스 AU

@summer__CHCS

이름

1.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하여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

2. 사람의 성 아래에 붙여 다른 사람과 구별하여 부르는 말.

 

 

가을의 아침에게선 진한 비 냄새가 났다.

평소였다면 사람의 말소리 대신 새들의 지저귐과 산책을 나온 개들의 타닥거리는 발소리가 빈 거리를 채우고 있을 시간이건만 눈치 없이 찾아온 장마 소식 때문인지 한산한 거리엔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만 주구장창 울리고 있었다. 창문에 달려들었다가 주욱 미끄러져 내리는 비들의 음이 흡사 제 자리를 모르고 방황하는 음표들의 나열 같아, 점점 늘어가는 빗줄기가 꼭 서툰 음악처럼 들린다. 습한 공기가 조그맣게 열려진 창문 틈새를 파고든다. 서늘함이 깃든 손길이 곤히 잠든 이들의 눈가를 간지럽히며 기상을 종용했다. 적막이 내려앉은 방에 찾아온 고요한 아침이었다.

틱, 틱. 뭉툭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던 초침이 꼭대기를 바라보자 분침도 그 뒤를 따르며 시침과 완벽한 직각을 이룬다. 이수혁은 요란하게 울리는 알람을 끄고는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파르르 떨리다가 이내 들려진 눈꺼풀 아래로 검은 눈동자가 흐린 빛을 내며 드러났다. 단잠을 방해받은 것이 썩 좋지만은 않은지 이리저리 뻗친 머리카락을 누르는 손길에 세심함이라고는 조금도 들어있지 않은 채다. 여전히 수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시선이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옷가지들이 저들을 함부로 집어던진 주인을 원망 섞인 눈길로 쳐다보는 것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오고, 서랍 위에 쌓여 있는 구겨진 서류들과 전력이 15% 남았으니 충전을 시켜달라며 보채는 휴대폰이 뒤이어 보였다. 이제 와 확인해 보니 배터리는 이미 2%로, 화면 역시 어두웠다. 하품을 하며 일어난 이수혁이 비척비척 걸어가 충전기를 가져온 후 이제 막 1%로 떨어진 휴대폰에 연결하더니 그대로 부엌으로 향했다. 커피라도 마시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다시 잠에 들 것 같았다.

커피가 내려지는 동안 만끽하는 여유에 그는 다시 침실로 걸음을 옮겼다. 맨발바닥이 거실 바닥에 닿는 소음이 빗소리 사이로 스며들었다. 미리 데워둔 우유가 담긴 머그잔을 서랍 위에 놓고, 둥그렇게 뭉친 이불더미를 들추는 광경이 퍽 익숙하다. 들춰진 이불 안에 있던 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잇새로 튀어나오는 앓는 소리가 자신의 것과 닮아 있는 것이 꽤나 기꺼워서, 이수혁은 조금은 다정해진 손길로 몸을 말고 그를 건드렸다. 메마른 목에서 나온 목소리가 인사를 건넸다. 록수야, 하고. 허공을 둥둥 떠다니다가 천천히 가라앉는 이름이 달다. 뒤척임이 잠시 멈춘다. 이불을 더듬거리던 손이 힘없이 늘어지며 김록수가 팔을 뻗었다. 어울리지 않게 약한 모습이었다.

“…… 형.”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녀석이 일어나자마자 찾는 게 자신이라는 사실은 생각보다도 더 크게 다가왔다. 주체할 새도 없이 올라가는 입술의 끄트머리가 그 증거였다. 그래, 일어나자. 이수혁은 김록수을 일으켜 세우더니 늘어지는 손을 잡고 조심히 뒷걸음질 쳤다. 아이에게 걸음마라도 알려주듯, 혹시라도 넘어질까 물러나는 걸음이 느리면서도 조심스럽다.

거실에선 진한 에스프레소 향이 진동을 하고 있었다. 이미 다 내려진 에스프레소가 담긴 자그마한 잔은 식어가고, 버릇처럼 토스트기에 넣어둔 식빵은 약간 탄 채로 올라와 입맛을 돋우기엔 좋지 않은 선택지처럼 보였다. 김록수가 소파에 앉아 뻑뻑한 눈가를 문지르며 하품을 쩍 했다. 얼마나 잔 건진 모르겠지만 피로가 덜 풀린 게 틀림없었다. 김록수는 부엌에서 분주하게 커피를 다시 내리고 식빵을 새로 넣는 이수혁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식은 에스프레소와 약간 탄 토스트는 이수혁의 몫이었다. 아, 나 줘도 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해지기 시작한 에스프레소 향 사이로 토스트의 노릇노릇한 향이, 또 그 사이로 지난밤 지겨울 정도로 맡았던 체향이 섞여들어 코끝을 간질인다. 툭 하고 고개가 옆으로 넘어간다. 소파에 길게 누운 김록수가 팔 받침대에 제 얼굴을 잔뜩 부비며 또 한 번 하품을 했다.

“또 자려고?”

김록수는 제 몫의 커피와 토스트를 내미는 이수혁을 올려다보며 고래를 내저었다. 다시 잠들 생각은 없었다. 기껏 누운 몸을 도로 일으키는 손이 조금 얄미운 것 같단 생각을 하긴 했어도, 이대로 다시 누워서 잠을 청하기엔 간만의 휴가였던 탓이다. 김록수가 토스트를 입에 물었다. 오물오물. 한 번 씹을 때마다 볼록한 볼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보며 이수혁이 남은 에스프레소를 한 입에 털어 넣었다. 처음엔 분명 쓰다고 생각했던 거 같은데 어느새 이 쓴맛에도 익숙해진 걸 보니 회사에서 많이 구르긴 굴렀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눈동자가 돌아간다. 조금은 달게 만든 커피를 쥐고 있는 손가락, 제 옷을 뺏어 입은 탓에 품이 낙낙한 소매가 덮은 손등과 그 사이로 드러난 흰 손목을 차례대로 훑는 시선이 담백하다. 그렇게 해서 멈춘 시야엔 비어있는 흰 손목만 있었다. 그가 제 손목을 쓸어내렸다. 김록수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을 위치를 매만지면서 마른 입술을 혀로 핥았다.

이름의 존재를 처음 안 것은 이수혁이 막 20대의 문턱에 섰을 때였다. 딱히 극적인 상황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워낙 몸을 험하게 쓰는 편이다 보니 상처가 생긴 것을 그 자리에서 눈치 채는 일도 거의 없었는데 하물며 낙서와도 같은 이름을 눈치 챌 수 있었을 리가. 하여 이수혁이 흉터들 사이로 자리한 조그마한 이름을 발견한 것은 아마 꽤나 많은 시간이 흐른 후였을 것이다. 이수혁은 처음 김록수의 이름을 보았던 날을 떠올렸다. 신기해했던가? 그보다는 담담했던 것 같았다. 이름이 있다 해서 꼭 운명이란 법은 없으니 그저 지워지지 않을 낙서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고, 이수혁은 불투명하게 떠오르는 기억을 되짚으며 생각했다.

“팀장.”

또렷해진 목소리가 그를 부른다. 벌써 호칭이 바뀐 걸 보니 잠에서 완전히 깬 모양이었다. 형이 더 좋았는데, 뭐 별 수 없나. 뒷목을 매만지던 이수혁이 무슨 일이냐는 듯 김록수를 내려다보며 응? 하고 반응했다. 그의 시선은 이수혁을 향해 있다고 하기는 미묘하게 엇나가 있었다. 고요한 시선을 따라간 끝에는 흘겨 쓴 글씨체가 박혀있는 손목이 있었다. 이수혁은 암갈색 눈동자를 스쳐지나간 여러 감정들을 훔쳐보았다. 희열, 만족감, 불안함, 그리고 부채감. 조그마한 눈동자 안에 참으로 많은 감정들이 제 얼굴을 비추다가 사라진다. 이수혁은 문득 입안을 간질이는 웃음에 손을 들어 입을 가렸다. 그와 함께 시선 역시 따라온다. 아, 귀엽게 굴기는. 김록수가 점령하다시피 한 소파 끝에 걸터앉아 짧은 머리카락 아래 드러난 둥근 이마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요 조그마한 머리에 들어있는 생각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이름 없어도 돼, 인마. 내가 그런 거에 연연할 인간으로 보여?”

“음, 조금은요.”

“야.”

김록수는 이수혁에게 헤드락이 걸리면서도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자신의 몸은 오늘도 흉터밖에 없었다. 이름도 없었고, 이름이 나타날 기미도 없었다. 이수혁의 손목에 새겨진 자신의 이름은 이다지도 선명한데. 그것이 어쩐지 억울하고 분해서, 괜히 제 목을 감싼 팔을 악 물곤 다시 몸을 눕혔다.

이수혁은 그 모든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는 김록수의 몸에 제 이름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최악의 경우로 김록수의 몸에 새겨진 이름이 자신의 것이 아니다 하더라도 괜찮았다. 그에게 있어서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였다. 불확실한 미래가 아닌, 당장 눈앞에 존재하며 살아 숨 쉬는 모든 현재. 그러니 이름은 이수혁에게 중요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와 별개로 김록수의 이름이 자신에게 있는 것은 좋아했지만 말이다.

“록수야, 김록수.”

“… 왜요.”

“오늘은 어디로 할래?”

그제야 소파에 길쭉하게 누워있던 몸이 자발적으로 일어났다. 그리곤 테이블 위에 놓인 연필꽂이에 있던 검은색 네임펜을 들어 뚜껑을 따고 그대로 이수혁에게 내밀었다. 그는 익숙한 태도로 펜을 받아들곤 얼른 고르란 듯 턱짓했다. 으음, 고민하는 듯 짧은 침음이 목울대를 울렸다. 김록수는 이내 결정했는지 제 목 뒷덜미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여기요.”

“그래, 뒤돌아봐라.”

김록수가 냉큼 뒤를 돌아앉았다. 시원하게 드러난 목덜미는 의외로 허연 편이었다. 길고 곧으며, 다른 곳에 비해선 흉터도 비교적 적었기에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이수혁은 아무렇지 않게 그런 생각들을 넘겨버린 후 김록수의 목을 잡고서 고개를 숙였다.

한 획, 동그랗게 그려진 것에 서늘함이 찾아왔는지 김록수의 몸이 잘게 떨렸다. 이어지는 길쭉한 획에선 솜털이 오소소 돋아난 채다. 이수혁은 이러한 반응 덕에 오늘로 벌써 몇 달째 반복되는 일과를 지치지 않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아침마다 제 이름을 확인하고 새겨 달라 하는 김록수를 밀어낸 적이 없었다. 그저 연하 애인의 투정일 뿐이었다. 이것이 진짜 이름이 될 수 없단 것을 알면서도, 혹여나 자신에게 이름이 없는 것에 그가 섭섭해할까봐 부리는 투정. 이수혁은 전방에 나서는 것도 아닌, 이런 투정이라면야 언제까지고 받아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내일은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김록수가 말했다. 이수혁은 응, 하고 가볍게 대꾸하며 목덜미에 새겨진 세 글자를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이수혁.

제 이름이 이렇게 달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도 꼬박 몇 달이다. 그는 이름 위로 제 입술을 파묻었다. 제 기준으론 한없이 얇은 김록수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목덜미에 코를 박고서 느리게 호흡한다. 쿵, 쿵. 엇박자로 뛰던 심장 박동이 서서히 맞아 떨어지는 것이 좋았다. 처음엔 굳어 있는가 싶다가도 이내 편안히 기대어 오는 그도 좋았다. 말캉한 입술이 닿은 부위가 유독 뜨거운 것도 같아서, 김록수는 홧홧 달아오르는 귓불을 채 숨기지 못하고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나한테 이름이 없어서 서운한 적은 없어요?”

“없어.”

“거짓말.”

이 또한 늘 반복되는 대화다. 이수혁은 결국 간지러운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리며 김록수를 끌어안은 채 뒤로 누웠다. 악! 단말마가 울린다. 그는 제 몸 위에서 바르작대는 김록수를 올려다보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록수야, 이리로 온. 꼭 강아지라도 부르는 듯한 투다. 김록수는 결국 제게 뻗어오는 손을 피하지 않았다. 저를 안는 손의 안쪽, 움푹 파인 손목 안쪽에 새겨진 제 이름 위로 아까의 이수혁과 같이 입술을 누르더니 그대로 그 품에 쓰러졌을 뿐이었다. 팀장, 하고 김록수가 이름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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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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