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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논커플링, 다과님

@kc_baj

정오를 알리는 소리와 함께 무너진 건물 사이 손바닥 반만 한 틈으로 구원이 고개를 내밀었다.

 

“…거기 밑에, 내 목소리 들리나?”



 

툭. 투둑.

 

겨울비가 차가웠다. 그 감각을 느끼며 감상에 젖을 겨를이 없게도, 위협적이었다. 김록수를 살린 빗물이지만 이제는 그랬다.

 

‘3일 내내 쫄쫄 굶어가며 괴물도 피해 살아남았는데 이제 와서 저체온증으로 죽으면 억울해서 눈도 못 감는다.’

 

알바를 하던 중에 갑자기 벌어진 일이라 외투 하나 걸치지 못했다. 당장 입을 옷을 찾는다면야 지갑 없이도 쉽게 구할 수 있겠지만 그럴 마음은 들지 않았다. 얼마 전까지 생생히 살아 움직였을 사람이었던 것들과 이 세상의 것이 아니었던 괴물의 흔적이 세상을 가득 채웠다. 현실감 없이 망가진 건물보다도 그게 더 눈에 띄었다.

 

그래서 김록수는 눈에 보이는 풍경으로부터 애써 시선을 돌렸다. 돌리려고 했다.

 

멀리서 무언가가 움직였다.

 

‘뭐였지?’

 

움직임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착각은 아니다. 하지만 괴물도 아니었을 거다. 고여 있던 빗물이 빠졌거나 쌓여있던 돌무더기가 무너졌을 뿐이겠지.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을 구해준 남자가 바로 몇 발자국 앞서 걷고 있다. 불러야하나? 어쩌지? 머리까지 얼어붙어 가는데 덜덜 떨리는 어깨 위로 코트가 걸쳐졌다. 어느새 다가온 건지 김록수의 얼굴을 바라보던 남자가 어깨를 토닥였다.

 

“잠깐만 여기 있어.”

 

남자가 피로 얼룩진 옷가지 속에서 꺼내온 것은 빗물에 젖어 바들바들 떠는 작은 고양이였다. 고양이는 김록수의 품에 안겨졌다.

 

김록수는 작은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그랬다. 하물며 제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든 이런 상황에, 이렇게 벌벌 떠는 생명이라니. 팔 안의 무게가 조금 버거웠다. 버거웠지만, 놓치지 않았다. 덜덜 떠는 사람이 하나, 고양이가 하나. 걸음이 이어졌다.

 



 

입김을 뿜으며 얼마나 걸었을까, 멀리서 사람의 소리가 들렸다. 무너지지 않은 건물을 끼고 코너를 돌자 지하철역에 숨어있던 사람들이 군인들의 안내에 따라 트럭에 몸을 싣고 있는 게 보였다. 영화에서나 볼 거라 생각했던 장면이었다. 새삼스럽지만 그제야 전쟁이 난거나 다름없는 상황인 게 실감이 났다.

 

“저기 따라가면 되겠다,”

 

남자가 김록수를 돌아보며 미소 지었다. 김록수는 자신을 더 안전한 곳까지 데려다 줄 트럭보다는 지금까지 함께 한 사람을 바라봤다.

 

‘이제 헤어지는 건가?’

 

남자는 평범한 사람과는 달랐다. 성격이나 성향이 아니라 마치 소설이나 영화에 나오는 초능력자처럼 신체구조가 남다른 것 같았다.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난 건 아닌 듯 스스로도 어색해하던 걸 보면 아마 세상이 뒤집어지면서 달라져버린 거겠지. 남자를 안지 이제 겨우 몇 시간이지만 이 사람이 앞으로 새로운 오지랖을 부리러 가리라는 건 눈에 훤히 보였다. 김록수를 구했듯이 숨죽인 채 떨고 있을 사람을 구하거나 어쩌면 괴물과 싸우려는 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 오면서도 갑자기 돌풍이 불거나 불길이 솟아오르는 곳들을 주시했으니까. 당장 달려가지 않은 건 김록수를 책임지고 있었기 때문이겠지. 남자에게 김록수는 제 품 안의 고양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쩌다보니 구해서, 제가 손을 놓으면 그대로 끝인 관계.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그저 흘러갈 인연으로 끝내기 싫었다.

 

“그쪽은 이름이 뭡니까?”

 

칼끝으로 발목을 툭툭 치던 남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말했다.

 

“말을 안했던가? 나는 이수혁.”

 

어쩌면 흘러갈 인연이 아니라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느 샌가 비가 그쳤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먹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치고 있었다. 얼핏 보이는 태양이 높아보였다.

 

“명일아!”

 

갑자기 인 소란에 무슨 일인가 고개를 돌리기도 전에 김록수의 품에 안겨있던 고양이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뛰쳐나갔다. 트럭에서 벌떡 일어나 뛰어내린 사람은 달려온 고양이를 꼭 껴안고 이리저리 살피며 한참을 울다가 이수혁과 김록수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자리로 돌아갔다.

덜덜 떨던 작은 동물은 그렇게 가족의 품을 찾았다.

 

다행이다.

 

 

역 안쪽에서 올라온 담임 선생님을 만날 때까지 이수혁은 김록수의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켜주었다.

 



 

그 3일간 김록수는.

이수혁을 만나서 김록수는.

 



 

김록수는 치열하게 살아왔다.

살아가기에 급급했던 나날들이었다.

그러나 진실로 생존만을 위해 숨죽이며 몸을 숨겼던 그 사흘간

누군가 구해주기를 끊임없이 기도했던 이틀째를 지나

아무도 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어떤 결론에 다다랐는가.

이제는 쓸모없는 이야기이다. 기억해낼 가치가 없는 이야기이다.

김록수의 인생과 가치관은 그날 거대한 분기점을 맞이했으니까.

 



 

김록수와 최정수가 햇병아리 신입을 갓 벗어나게 되었던 어느 날. 부상으로 입원했던 팀원 전원이 무사히 퇴원해 다 같이 모여 점심식사를 했다.

 

“먹고 바로 업무복귀니까 되는 데까지 최대한 많이 쑤셔 넣어라.”

“익었다 싶음 일단 입에 집어넣어. 갑자기 비상이라도 뜨면 망하는 거야.”

“에이 설마.”

“설마고 뭐고 그런 말 입에 담지마라 부정 탈라.”

“불이 좀 약한데 야 여기 좀 구워봐라.”

“이 고오급 화력으로 삼겹살을 구우라하네.”

“니 어차피 그 불로 괴물 굽고 다니잖아. 삼겹살님이 그것들보다는 대접 받을 신분 아니냐.”

“얘랑 같이 싸우면 고기 익는 냄새 장난 아님.”

“냄새 좋던데.”

“먹어봤냐?”

“솔직히 좀 끌렸다.”

“팀장님 더 시켜도 되요?”

“어차피 법카인데 뭘 물어. 많이 먹어라.”

“우리가 이거 먹는다고 부도날 회사였음 진작 망했겠지. 야 먹어먹어.”

“짱님 우리 저녁엔 전 먹으러가요. 파전이 땡긴다.”

“비도 안 내리는데 웬 파전.”

“파전 뭐 비 내릴 때만 먹나. 그리고 내 팔꿈치가 말씀하기를 저녁에 비가 올지어니.”

“록수야 저녁에 비 오냐?”

“뭐냐? 왜 내 말 안 믿냐?”

“17시부터 인공강우 예정되어있습니다. 정화작업 끝날 때까지 외출금지인데 공문 못 보셨어요?”

“벌써 오염농도가 그렇게 됐나? 어쩐지 요즘 삼겹살이 땡기더라니. 원래 황사는 삼겹살로 씻어 내리라 했어.”

“뭐라는 거야. 그런 게 다 과학적, 의학적 근거 없는 상술의 언어인거야. 그리고 괴물이 뿌리고 다니는 독가스가 황사랑 같냐?”

 

드물게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평화?

김록수는 문득 예민하게 날이 서있던 정신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다. 확실히 지금 상황은 평화롭다 말하기에 어폐가 없었다. 몇 주간 골머리를 썩게 하던 문제는 전부 해결했다. 한 때는 어떻게 되나 했던 팀원들도 전원 팔다리 어디 하나 모자람 없이 멀쩡하게 김록수의 곁에 앉아 있다. 울리는 경보도 없고 어딘가 무너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지금 이수혁 팀에게 떨어진 임무라고는 눈앞에서 잘 구워지고 있는 삼겹살을 전부 씹어 넘겨 소화시키는 것뿐이다. 예민할 필요도, 긴장하고 있을 필요도 전혀 없었다.

아니. 아니지.

지금 김록수가 느끼는 이 안정감은 당장의 상황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감각이었다. 인생에 불안을 느낄지언정 몸도 마음도 편안하다. 살아갈 오늘을 걱정하지만 다가올 내일에 벌써부터 지치지 않는다. 현재를 버티는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 살아갈 미래를 그린다.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생존의 위협을 매일같이 받고 있으면서도 두려움에 떨지 않는다. 어떻게든 이겨내고 말거란 확신을 가지고 산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이었다.

살아가기 바쁘고 힘들었던 김록수였다. 잃기만 했던 인생이었다. 기대하지 않고 포기하는 법을 배운 인생이었다. 그랬는데. 이수혁을 다시 만나고 회사에 입사해서, 힘들고 지칠 때도 많지만 팀원들과 웃고 떠들며 추억을 만들고 여유를 알았다. 세상이 폭력이 아닌 다정으로 다가왔다. 언제나 고요하고 적막만 가득하던 서늘한 세상에 온기가 가득 찼다.

그래. 김록수는 지금 어린 시절 이후 차마 기대조차 하지 못했던 평안을 만끽하고 있다. 친척집을 전전하고 끝내 도달한 시설에서 나와 사회에 홀로 던져졌던 그때로부터 더 먼 옛날, 마치 부모님과 함께하던 그 시절처럼. 고통을 홀로 인내하지 않도록 곁을 지켜주고 어려움을 나누며 난관을 해쳐나갈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모으고 그러나 감당하지 못할 힘겨운 일에는 대신 나서주는. 그런 사람들이 김록수와 함께 하기에 비로소 느끼는 안정감. 나의 편인 가족에게서 느낄 수 있는 그 감정.

 

‘가족.’

 

가족이라.. 깨달음이 명확해졌다.

 

‘가족 같은 분위기의 직장이라니 뒤도 안돌아보고 도망쳐야 할 기피 1순위잖아.’

 

그렇지만 애초에 제정신으로 멀쩡히 인생사는 사람이면 이 회사와 연이 닿을 일도 없다. 그리 생각하니 아무렴 뭐 어떤가 싶어졌다. 김록수는 제 삶에 닿은 온기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파전이야?”

“저녁까지 뭘 기다려. 팀장님 우리 가는 길에 파전 싸갑시다.”

“점심을 이렇게 먹으면서 파전이 또 넘어가요?”

“이 배랑 그 배는 다르지. 그리고 간식 임마 간식.”

“사거리에 분식집 오늘 열었던데 튀김도 사가요.”

“오징어튀김 먹고 싶다.”

“바다가 그 꼴인데 오징어가 어디 있어.”

“대왕오징어 비슷한 거 있다하지 않았나?”

“다리 네 개 달린 돌덩이처럼 생겼더만 뭔 대왕오징어야.”

“관자삼합 먹고 싶다.”

“쌈이나 싸먹어. 고기 앞에 두고 다른 거 찾는 거 아니다.”

“근데 왜 분식집에서 감자튀김은 잘 안팔까? 고구마튀김은 파는데.”

“감자튀김 팔면 햄버거까지 팔아야 되잖아. 얼마나 손이 많이 가냐.”

“뭐라는 거야.”

“밥 먹을 사람?”

“나.”

“나요.”

“저요.”

“사장님 여기 된장 네 개 공깃밥 여섯 개요.”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하면 보통 오른쪽 끝 테이블, 이수혁 팀장의 맞은편이 김록수의 지정석이다. 어떤 소란이 일어도 흐트러지는 일이 없으며 그러기 위해 훈련하는 사람들의 자리. 한도 끝도 없이 실없는 소리를 이어나가는 옆자리와 달리 이쪽 테이블에서는 언제나와 같이 차분하고 침착한 분위기가 흘렀다. 일단은 그랬다.

 

“김록수. 안 먹고 뭐해. 접시가 비질 않네.”

“비운 접시가 멋대로 차오르는데요. 뭡니까. 많이 먹고 먹은 만큼 일 하라는 압박? 이러지 않아도 나는 항상 ‘팀장과 마주보고 식사’라는 압박을 견디고 있는데?”

“얼씨구. 누구 덕에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코로 넘어가는지 모르겠는 건 난데?”

“항상 침착하고 차분하라면서요. 침착·차분 어디가고 밥이 코로 넘어가.”

“코로 넘어갔는데도 차분한 게 포인트 아냐?”

“아, 선배 그건 아니지.”

“그래서 파전은요? 고?”

“록수는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딱히 생각 안 나는데요.”

“벌써 배불러?”

“아뇨. 그냥. 아무거나 주는 대로 잘 먹으니까.”

“잘 먹는 거 말고 좋아하는 건?”

“고기.”

“재료 말고 요리 이름으로 말해보자.”

“고기구이.”

“그으래. 우리 록수 고기구이 많이 먹어라.”

“그만 좀 쌓아요. 알아서 먹을 게.”

“사장님 여기 목살 5인분이요!”

“거기, 소화 되는 만큼만 먹어라. 탈나지 말고.”

“팀장님 우릴 뭘로 보고 그런 소리를. 우리 위장 그렇게 나약하지 않습니다.”

“강인하게 키운 아입니다! 이 정도는 끄떡없습니다!”

 

익숙해진 소란에 파묻혀 있으면, 웃음이 나왔다.

 

 

“시간 나면 한번 잘 생각해 봐.”

 

식사를 이어가다가, 이수혁이 말했다.

 

“식당 갈 때 자주 시키는 메뉴라든가. 젓가락이 한 번 더 가는 반찬, 가끔씩 밤중에 생각나는 음식 그런 거. 알아서 나쁠 것도 없잖아.”

“...생각해볼게요.”

 



 

“아. 배부르게 잘 먹었다.”

“배가 부르니 이제 새로이 배를 채울 먹거리를 수급하러 나서야겠군,”

“전방에 목표 발견!”

“좋아 돌격!”

 

식당을 나서자마자 팀원들이 작전구역을 향해 돌진하듯 달려갔다. 목발을 짚고도 잘만 달리는 최정수를 보며 끝도 없이 길게 뽑힌 영수증을 정리하던 이수혁과 김록수가 껄껄 웃었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집게 어디 있냐. 자! 읊어! 내가 담는다!”

“만두랑 당면말이랑...”

“이건 뭐예요? 빵?”

“호박이랑 고구마도 담자.”

“팀장님! 록수! 빨리 와서 골라!”

“록수! 너 야채튀김 좋아하지?”

“내가?”

“아니야? 잘 먹던데?”

 

‘그런가?‘

 

최정수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김록수는 이수혁을 바라봤다. 이수혁은 씨익 웃으며 김록수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더니 어서 가자며 등을 밀었다.

 

“뭐하냐 담아라.”

“록수가~~ 좋아하는 야채튀김~~”

“정수는 계란이요~”

“팀짱은 뭐 드실래요?”

“고추튀김.”

“완전 아저씨.”

“뭐.”

 

 

평범함의 기준이 달라진 세상에서 한 때 누구나 누릴 수 있었던 평범한 평화를 만끽하며 김록수는 미소 지었다.

고개를 들면 하늘 높이 태양이 있었다.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

 

“록수 요즘 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다녀. 적당히 해 그러다 병날라.”

“ㄴㅔ”

“제대로 듣고 있는 건 맞냐?”

“으에”

“얼씨구.”

“얘 요즘 아주 그냥 미쳤다니까요.”

“피해보고서랑 경보발령기록은 왜 파고 있는 거야? 뭐 걸리는 거 있어?”

“확실해지면 보고할게요. 아직은 나도 어렴풋해서.”

“다 좋은데 몸 안상하게 해라.”

“팀장 담배나 끊고 말해요.”

“하여튼 한마디를 안 져요.”

“맨날 깨지는 게 일인데 이길 수 있으면 이겨야지.”

“아이고 그래 나를 밟고 올라간 그곳의 풍경 오래오래 누려라.”

 

김록수는 최근 남는 시간을 한 가지 일에 전부 쏟아 붓고 있었다. 이 세상을 좀먹어가는 재앙은 경고를 하지 않는다. 인간은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괴물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만약에. 만약에 하늘에 구멍이 뚫리는 장소와 시간을 미리 예측할 수 있다면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우리 팀도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겠지.’

 

전 세계의 학자들이 몇 년째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문제였지만 김록수는 이런 종류의 계산과 예측에 유용한 능력을 지녔다. 얼핏 길이 보이는 듯하여 최근엔 모니터와 종이뭉치에 코를 박다시피하며 살았다. 최정수는 가만있어도 바쁜데 제 발로 일을 찾아나서는 하나뿐인 동기가 심히 걱정된다며 책상에 박힌 듯 움직이지 않는 김록수의 곁을 지켰다.

 

“록수야 우리가 적당히 해라고 하는 거 진심으로 하는 말이다? 너 요즘 들어 작전 없으면 그것만 파고 있잖아. 제대로 쉬고는 있어?”

“나 백수할거라니까. 일만 하다 죽을 일 있냐. 쉴 거 다 쉬면서 하는 거야.”

“어떻게 쉬는데.”

“먹고 자는데.”

“그게 다야?”

“뭐가 더 필요해,”

“여가생활 어디 갔어.”

“여가생활..”

“동기야 네 취미도 없느뇨? 휴일에 뭐하고 삶?”

“자는데.”

“허이고.”

“뭐.”

“사람이 기분 전환도 없이 일만 하고 살면 어떡해. 보고 읽는 게 네 일이긴 하다만 그래도 보고서 말고 뭐 소설 같은 거라도 안 읽어? 우리 세대는 판타지 소설이 유행한 세대 아닌가?”

“중고딩 때야 가끔 읽었지. 지금은 영..”

“꼭 소설이 아니더라도 뭐 없어?”

“취미가 꼭 필요한가.”

“동기야 너는 인생을 즐기는 법을 좀 배워야해.“

“허?”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면 금방 시들어버릴 걸? 어디를 갈 때도 말이야. 몇 시간이고 운전만 하면 지쳐. 가끔은 휴게소에 들려서 스트레칭도 하고 군것질도 하고 그래야지.”

“흐응.”

“너 맨날 그렇게 꾸물꾸물한 피해현황보고서나 읽고 다니니까 마음이 병들고 피폐해지는 거야. 날도 좋은데 가서 햇볕도 좀 쬐고.”

“네네.”

 



 

김록수는 당신들로 하여금 비로소 인간을 배우고 인간이 되었다.

 



 

지금이라도 도망가면 살 수 있다. 아마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재앙을 저지하는데 온 힘을 쏟았다. 여기서 저 괴물을 막지 못한다면 도망친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할 사람들이니까. 의무를 다하지 않은 자들로 인해 우리가 이곳에 있는 건데 도망? 그럴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됐다. 우리는 우리의 목숨이 아니라 세상을 지키기 위해 이곳에 섰으니까.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그러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니까.

그래서 김록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시야가 확보되는 위치를 잡아 괴물의 행동패턴을 분석하고 예측하여 지시를 내린다. 벌써 몇 년이고 해온 일이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번엔 아무리 노력해도 동료들을 전부 구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들을 죽기 좋은 위치로 몰아넣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지. 이러면 안 되지. 정신 차려 김록수.

 

‘전부 구하면 되는 거야.’

 

이겨낼 수 있을 거라 희망을 품었다. 희망을 품고 싶었다. 팀장 말대로 여태껏 쉬운 일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우리는 불가능할 것 같은 어려운 일들을 어떻게든 해결해왔으니까. 최대한 방어에 치중해서 괴물이 구역 밖으로 나가지만 않게, 지원이 올 때까지 버티기만 하자. 그래서 모두가 살아남도록. 과부하로 흐려지는 의식을 다잡으며 바라고 또 바랐다.

괜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기 싫었다. 수많은 사람을 구해낸 걸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

 

김록수는 시작도 전에 끝을 보았다. 현장에 나타난 저 등급 외 괴물을 처음 본 순간 예측해버린 우리의 미래가 싫어서. 최선을 다해 스스로의 능력을 부정하고 불가능한 미래를 그리며 발악했다.

 



 

김록수는 사람에게 구해져 사람에게 구원받았다.

김록수의 은인이자 구원이자 등불이요 등대이며 태양인 사람들

목숨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사랑한 소중한 가족들

 



 

멀리서 정오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

 

지원군이 도착한 후, 방해가 될 뿐이라 옮겨진 후방에서 김록수는 제 앞에 하나 둘씩 모이는 동료들을 바라봤다. 하나뿐인 동기, 생명의 은인, 너무나 소중한, 김록수의 가족들. 움직이는 입이 없는데, 귓가를 채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내렸지만 김록수는 마구잡이로 날뛰는 기록을 제어하려 애써 노력하지 않았다. 끔찍한 침묵이 내려앉은 공간에서 쏟아지는 소음을 기꺼이 견뎠다.

 

‘어디 시골 내려가서 농사나 지어야지.’

‘나는 그럼 그 옆에서 과수원이나 할래. 형, 내 고향에 좋은 땅 있는데 같이 내려가요.’

‘좋지.’

‘김록수 너도 같이 가자.’

‘어차피 백수할거라며. 시골백수 해.’

‘셋이 시골 내려간다고? 일꾼 필요하면 우리 불러라 고기 왕창 사간다.’

 

삶을 노래하는 목소리 사이에서 김록수만이 고요했으며 고독했다.

툭. 툭.

턱을 타고 핏물이 흘러내렸다.

 



 

때때로 김록수는 생각하곤 했다. 자신은 죽음을 박탈당한 게 아닌가 하고. 몇 번이고 죽음의 위기에서 홀로 살아남으며 김록수는.

 



 

김록수는 슬픔에 잠기지도, 절망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는 안됐다.

 

여기서 멈춰서면 안 된다. 일어서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에게는 맡겨진 일들이 있으니까. 나를 믿고 갔으니까.

 

‘사는 게 최고야.‘

 

그래. 사는 게 최고다. 죽고 싶은 마음 따위 먹어본 적 한 번도 없다. 자신은 오래오래 살 거다. 살아남을 거다. 빌어먹을. 기필코 백수가 되고 말테다. 팀장이 맡기고 간 일이 있으니 예정보다 조금 오래 걸릴지 몰라도 반드시 백수가 되고 말테다. 두고 봐. 대형 길드고 정부고 뭐고 비리, 불법은 전부 다 캐내서 싹 쓸어버리고 말거야. 저 빌어처먹을 괴물들도 전부 치워버린 다음 세상이 살만해지면 퇴직금 왕창 받아버릴 거니까. 그 뒤엔 한적한 시골에 내려가서 큰 집을 살 거다. 거기서 농사도 짓고 과수원도 하고 저녁엔 고기를 구워먹으며 그렇게. 그렇게 살아갈 거다.

그러니까.

힘낼 테니까.

오늘은 조금만 쉴게요. 몸에 힘이 안 들어가서 그래. 조금 지쳐서 그래.

한숨만 푹 자고 일어나서

나 열심히 할게요.

 

 

흐린 시야로 무너진 벽이 들어왔다.

 

‘아. 시계.’

 

12시 30분.

 

태양이 정남쪽에 위치한 시각.

태양이 가장 높게 뜬 시각.

이수혁과 김록수가 통성명을 했던, 겨울비가 그쳤던, 모두와 함께 행복했던, 그 시간.

힘겹게 올려다 본 하늘엔, 머리를 따사롭게 내리쬐는 태양이 보이지 않았다.

바라본 세상은 온통 어둠이었다.

온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새까만 어둠이었다.

암전이었다.

오후창   오전오후창

첫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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