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시, 논커플링(약 수혁록수), 가온뉘님
@llewellyn_fn (본계:@llewellyn_onyx)
오전 8시. 김록수는 수면실에서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사설경호업체 ‘아이기스’는 노동근로법이 무색하게 아침이 이른 회사였다. 엄밀하게 말해 회사라고 부르면 안 되는 특수집단이었지만 뭐 어떤가, 남들에게 설명할 때는 그럴싸한 거짓말이 제일 잘 통하는 법이었으니까. 생태계의 순환고리 끝을 담당하는 청소부와도 같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니 숨겨야하기도 했고.
아이기스의 핵심 인력인 통합1팀은 유능한 만큼 언제나 바빴고 사실은 야근이 근무 기본 옵션에 들어가 있는 건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로 잦았다. 거기에다 1팀 사람들은 하나같이 가족도 없는 홀몸들뿐이다 보니 회사 수면실이나 당직실, 여의치 않으면 오피스 한켠에 놓아둔 간이침대에서 잠을 청하는 일도 흔했다.
암막커튼을 꼼꼼하게 쳐둔 수면실은 여전히 깜깜했지만 어둠에 익숙한 눈은 널브러져서 아직까지 꿈나라에 가있는 1팀 사람들을 잡아낼 수 있었다. 하긴, 어제도 고된 하루였다. 언제는 안 그랬냐마는, 고참들 입에서 우는 소리가 나왔으니 이정도면 올해 탑 쓰리에 들지 않을까. 잠시 숨 좀 돌리나 싶으면 터져대는 온갖 일에다 자정에 이르러서는 길드 간의 사소한 시비가 본격적인 싸움으로 번지는 바람에 그걸 말리러 튀어나갔었다.
거기까지면 얼마나 좋았을까. 머리에 열이 올라 할 말 안 할 말을 가리지 않던 간부급들이 기어코 폭로전을 시작하는 바람에 현장 정리뿐만 아니라 썩어빠진 데도 같이 뜯어야하는 사태가 되었다. 하긴, 야심한 밤에 소란을 피우는 곳치고 멀쩡한 곳은 없으니까 서로의 머리채를 쥐뜯는 난장판이 아니었더라도 김록수 스스로 일감을 만들긴 했을 테다.
어쨌거나 두 길드의 내부 서류를 기록하는 데에만 한참 시간을 쓰는 통에, 통합1팀의 브레인이 토막잠이라도 자려고 누운 것은 새벽 세 시 반 조금 넘었을 때였다.
‘몇 시간 잤지. 네 시간?’
눈만 뜨면 빠릿하게 움직일 수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아침잠 자체가 많은 록수는 물 먹은 스펀지 같은 몸뚱이를 이끌고 통합1팀 사무실로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사무실은 제가 마지막으로 나섰을 때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였다. 언제나처럼 제가 첫 출근자. 딸깍, 형광등을 켜고 컴퓨터의 전원을 올렸다. 자연광과 인조광이 뒤섞인 정경은 가끔 능력과다사용으로 번지는 시야를 닮아있었다. 언제쯤이어야 압도적으로 싸워서 내 사람들이, 내가 맘 편히 발 뻗고 잘 수 있을까. 헛생각이다. 잠이 모자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1팀의 두뇌는 자리비움 상태였던 인트라넷 접속을 온라인으로 돌리고 최근 분석 중인 C 길드의 장부와 서류를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정규업무는 9시에 시작하지만 그 때부터 일했다가는 하루가 모자랐다. 이왕이면 일찍 손을 대서 조금이라도 빨리 퇴근하는 편이 좋았다.
◆
굿모닝~ 빠빠빠 빠빰 빰빰빠빰. 굿모닝~. 풍성한 성량의 아카펠라가 통합1팀 팀장, 이수혁을 깨웠다. 조용하던 방에 울려 퍼지는 악마의 알람에 어으으, 좀비 같은 소리를 내며 일어난 그가 기지개를 켰다.
관절에서 으드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제야 정신이 들었다. 세상이 한 번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는 동안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아침에 출근하기 싫다는 마음일 것이다. 열심히 버둥거리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는데도 어떻게 출근은 끝까지 싫냐. 입안으로 불퉁한 말을 내뱉은 수혁은 꺼끌하게 돋은 수염을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보고선 바로 일어났다. 지금쯤이면 요령도 없이 대책 없게 열심히 사는 김록수 녀석이 책상머리 앞에 앉아서 일을 시작했을 터였다. 그 풍경이 쉽게 떠올라 수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하여튼 특이한 녀석. 무너진 건물에서 건져냈던, 야생 살쾡이마냥 날이 잔뜩 서있던 새파란 스무 살 놈이 반 년 동안 저 따라다니며 밥값 하겠다 떠들어대는 걸 뜯어말려 놨더니, 입사 가능한 나이가 되자마자 냉큼 신입사원 타이틀을 달고 나타났더랬다. 그러다 붙임성 좋은 민철이 놈이 반 장난으로 너는 꿈이 뭐냐고 물은 것에 내놓은 대답이 정말 가관이었다.
“백수 할 건 데요?”
근로계약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의 일이었다. 무심하게 멀뚱한 표정과 도저히 매치가 안 되는 엉뚱한 답이 불러일으킨 파급력이란 어마무지해서 다들 자기소개는커녕 터져버린 웃음보를 추스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B-7 구역에서 콜이 들어오는 바람에 김록수도 최정수도 통성명 하나 못 한 상태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정신없는 중에 이름도 제대로 모르니 신입, 신입하고 부를 수밖에 없었고 어쩌다보니 별명처럼 굳어졌다.
그 때는 김록수 이 자식이 이렇게 막무가내 일벌레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지.
너 과로하는 거 아니냐고 물으면 무슨 개소리를 하냐는 표정으로 돌아볼 것을 안다. 저희 회사, 아니, 지금의 대한민국 내에서 가장 머리가 좋을 놈이 제 상태는 하나 돌아볼 줄 모르다보니 저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머리 굴리는 데에는 단 것이 최고렷다. 김에 팀원들 입에 물릴 주전부리도 잔뜩 사두고.
세상이 이 지랄이 나버렸는데 내 새끼들은 내가 챙겨야지 않겠냐.
◆
삐비비빅, 다섯 번째 알람을 끈 최정수가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거 피곤해 뒤지겠네. 그래도 이제는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됐다. 남들한테 번듯한 회사를 다니는 것처럼 말을 맞춰둔 것도 있고, 무엇보다 이수혁 팀장님과 고희정 선배님은 지각에 무척이나 민감한 사람이었다. 평소 성격을 보아하면 아닐 것 같은 사람들이 분초를 다투는 직종에 몸을 담고 있는 탓인지, 그것도 아니면―. 음, 하긴 저도 아는 얼굴이 늦게 튀어나오면 걱정되다 못해 심장을 토할 것만 같았으니 남 말은 아닐지도 몰랐다.
모든 게 다 뒤엎인 세상에서는 누구나 그랬다. 통합 1팀의 누구를 돌아봐도 가족친지 다 죽고 저 홀로 살아남아버린 사람들 아닌가. 찰나에 많은 것을 잃은 이들은 남극의 펭귄들처럼 몸을 부대끼고 뭉쳐있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조금 더 용감한 사람들이 ‘아이기스’를 만들었고.
엄청난 사명감을 가지고 들어온 것은 아니었다. 그냥 곁에 있어줄 사람이, 지낼 곳이 필요했을 뿐.
그러나 지금 이곳은 직장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었다. 원룸에서 회사로 가는 건 차라리 기숙사에서 집으로 가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었다. 하루하루가 피곤한 것만 빼면 모든 게 만족스러웠다. 아니다, 김록수, 제 동기 놈이 속 좀 그만 썩이면 훨씬 더 살맛이 날 테지.
“그 멍청한 새끼, 아침바람부터 일하고 있는 거 아냐? 어제 털어온 장부 기록하고 있을 거 같은데.”
어제는 새벽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급기야는 남의 싸움판에 끼어들어 머리채도 잡고, 정말 매우 친절하게도 구린 구석을 털어준 덕에 새벽에 퇴근도 못하고 현장압류권을 발동해서 숨겨진 장부까지 싸그리 탈탈 털어 회사로 옮겨놓고 나서야 하루가 끝났다. 날짜야 진작에 지나가 버렸지만 베개에 머리 대고 자기 전까지는 날이 바뀌는 게 아니라는 지론을 가진 정수에게는 그랬다.
출근을 준비하는 정수의 움직임이 조금 급해졌다. 하나뿐인 동기 놈이 제 몸 상하는 것 모르고 자꾸만 내달리니 제가 챙겨야지 않겠나. 이렇게 보라면 동갑내기가 아니라 손 많이 가는 동생 같기도 했다.
하긴, 실제로도 김록수는 저희 팀에서 제일 손이 많이 가는 놈이었다. 낯을 가리기는 또 오지게 가리는 놈이 손을 타기는 또 엄청 타서 딴 사람들한테 맡겨뒀다간, 자기 상태 이상한 걸 알아도 입 꾹 다물고 누가 정신계 능력자 아니랄까봐 뇌를 속여가며 정신줄 단디 붙들고 있다가 아주 몇 날 며칠을 앓아누워 버리는 거였다. 작년 여름이 딱 그짝이었지. 정수는 이전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한여름에 전기 공급 끊고 불량 길드에 침입하고서 거기 장부를 ‘기록’하겠답시고 시간 좀 벌어 달라 하기에 두 시간을 벌어주었더니만, 갑자기 무전이 똑 끊겼다. 이게 무슨 일이냐며 급하게 회수하러 갔다가 마주한 게 뭐였게. 벌겋게 익어서 바닥에 널브러진 김록수 놈이었더랬다. 그날 내려앉은 심장이 몇 개인지 네가 아느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돌아온 답이라곤, 붙임성 없게도 “이 길드 완전 글렀는데 언제 털어먹으러 갈래?”였다.
그런 놈이었다. 곁에서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될 녀석. 현장에 자꾸만 튀어나오는 머리 쓰는 놈. 그 주제에 자기가 무슨 최전방에 있느냐고 예사스럽게 물을 헛똑똑이.
지금쯤이면 어제 저희가 날라다 준 장부나 들여 보면서 머리를 팽팽 굴리고 있을 테다. 머리 굴릴 때는 단 게 최고지. 사탕이며 초콜릿 따위를 자꾸 물려주지 않으면 회전수가 떨어지는 게 보이기도 했으니까. 아니다, 오늘은 마시는 걸로 해볼까. 정수는 단골 카페에서 얼마 전부터 팔기 시작한 쇼콜라를 떠올리고 입가를 올렸다. 몇 분 지각할 테지만 록수를 예뻐라하는 팀장이며 선배라면 이정도는 봐줄 테지.
◆
통합1팀의 출근 기록은 대체로 일정한 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당직실에서 자고 가지 않는 한에야 웬만해선 팀장이 제일 먼저 왔고, 그 다음이 희정 선배. 대학교 같은 과 출신이라던 동우 선배나 민철 선배, 윤서 씨가 우르르 몰려오고 믹스 커피나 한 잔 마시고 있으면 지원 선배와 시은 선배가 들어왔다. 그렇게 하나 둘 씩 사람들이 늘어나다가 제일 먼 데서 살고 있는 정수가 아슬하게 지각을 면할 만큼 뛰어드는 것이 보통이었다.
오늘도 여지없었다. 문이 열리는 기척, 발걸음의 규칙성 따위에서 지금 들어온 사람이 이수혁임을 판단한 록수는 장부에서 고개를 떼지 않은 상태로 인사를 건넸다.
“팀장, 어서오십쇼.”
“어이구, 이 새끼가 아침부터 일하네. 너 백수 한다며.”
“네, 할건데요. 백수. 할 일 다 마치고 맘 편하게 백수로 지낼 겁니다.”
“쯧, 꼴을 보니 아침도 안 먹었겠네. 이거나 먹어라.”
따박따박 쏘아지던 말대꾸가 거기서 멈췄다. 입안에 뭔가 쑥 들어왔다. 단 맛. 이로 가볍게 무니 초콜릿 막이 앞니에 으깨지며 카라멜 향이 훅 밀려왔다. 그 아래로 바삭한 쿠키까지. 초코바다. 마침 당 떨어진다 싶었던 참이라 록수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당연히 읽고 있는 장부에서 눈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이제 년 단위로 알고 지낸 사이라 어떤 표정으로 어떻게 행동할지 쯤은 훤하니까. 저를 흐뭇하게 보고 뒤도 안 돌아보고 자기 자리로 가 앉았겠지. 띵동, 하고 인트라넷 메신저에 누군가 로그인 했다는 알람음이 들렸다. 지금처럼.
“팀장, C 길드 파고들 건수는 점심 전에 잡을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오냐. 이따 애들하고 상의 좀 해보자.”
그 말을 끝으로 김록수는 남은 초코바를 우물우물 먹으며 다시금 데이터의 바다로 침잠했다.
수혁은 곧이어 들어온 희정의 손에 들려있는 츄파츕스 레몬 맛 사탕을 보고 순간적으로 웃음을 터뜨릴 뻔했지만 저보다 겨우 하루 늦게 들어온 희정이의 도끼눈에 입술을 짓씹고 파열음처럼 터지려던 웃음을 삼켰다.
“안녕, 우리 일벌레 씨.”
“희정 선배.”
“허이구.”
까닥 묵례만 하려다 호칭까지는 말한 김록수와 서류의 산을 번갈아 바라보던 희정이 엷은 한숨과 함께 캐비닛에서 작은 정리함 하나를 꺼내다 장부를 읽어나가느라 정신이 팔려있는 신입 놈 곁에 놓았다. 그 안으로 사탕을 놓고 자리로 갔다. 분명 달각거리는 소리가 났을 텐데도 김록수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다.
희정이 수혁에게 시선을 보내왔다. 1팀의 채찍을 담당하고 있는 희정치고는 퍽이나 장난스러운 눈빛이었다. 수혁은 희정의 눈짓을 용케 알아듣고 단체문자를 날렸다.
― 긴급공지. 우리 머리 쓰는 신입놈 당 모자라다. 뭐든 하나씩 사들고 오면, 너희 간식거리는 팀장이 쏜다.
희정은 히죽거리며 핸드폰 화면을 열었다가 동그란 눈으로 제쪽을 바라보았다. 뒷말은 예상을 못 했나보지. 이수혁 팀장은 개구지게 웃어 보이며 책상 위로 까만 봉다리를 올렸다. 록수 녀석만이겠냐, 너네들도 내 새끼들이다, 임마.
이런 걸 이렇게 늦게 전달하면 어쩌느냐고 문자로 우는 소리를 써서 보낸 경영학과 트리오 윤동민―윤서, 동우, 민철의 이름 앞 자만 따서 이 팀장이 부르는 호칭이었다―은 정작 할로윈이라도 챙길 기세로 양 주먹이 가득하게 초콜릿을 사들고 왔다. 200원, 300원 짜리를 뭉텅이로 사온 덕에 바닥에 있던 레몬맛 츄파츕스는 이제 보이지가 않았다.
슬슬 당이 떨어진 김록수가 무의식중에 손끝을 더듬어 초콜릿 하나를 까 우물우물 먹었다. 헤이즐넛 향이 짧게 스몄다. 그걸 사왔던 민철이 다른 사람들을 향해 승리의 화이팅 포즈를 취해보였다.
경영 트리오가 오늘의 퀘스트를 마친 보상으로 팀장이 하사한 맞춤형 간식을 받고 자리로 돌아간 지 얼마 안 되어서 지원과 시은이 틴캔에 들어있는 사탕을 들고 왔다.
“것봐, 내가 뭐랬어. 윤서가 껴있으면 쟤들 무조건 초콜릿 사올 거라고 그랬지?”
“아, 네네. 알겠습니다. 우리 신입, 단 거면 뭐든 좋다고 해서 선배님들을 참 고생시키지요.”
한창 집중 중인 김록수는 어차피 듣지 못할 거라는 판단 하에 평소처럼 목소리를 높여 말한 시은이 성큼성큼 걸어가 틴캔 속 사탕을 정리함 안에 한 움큼 올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시은 선배. 지원 선배.”
“응, 좋은 아침.”
그대로 대화가 끊겼다. 사람 기척에 자동응답기마냥 인사를 건네고 제 할 일이나 하는 발칙한 신입의 모습에 픽 바람 빠진 웃음을 흘린 지원은 이내 팀장을 향해 손을 펼쳤다.
“후레쉬베리 주세요, 팀장님. 저 그것만 먹는 거 아시죠?”
수혁의 지시대로 달달한 주전부리를 사들고 온 팀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워나갔고 그만큼 록수 앞의 상자에는 당분 보급 용품이 쌓였다. 마지막 주자는 당연히 최정수였다. 굳이 회사에서 먼 거주지를 고집하는 또 다른 신입은 저 홀로 생뚱맞게 커피숍에서 아이스초코를 테이크아웃해왔다.
“헐, 최정수, 그거 반칙 아냐?”
“아 좀 봐줘요. 김록수 저 자식 보나마나 일하고 자빠졌을 거 같아서 팀장님 연락 받기 전에 생각한 거였단 말예요. 야, 김록수. 형님이 너한테 딱 필요한 거 사들고 왔다!”
정수가 우렁차게 소리를 쳤지만 록수는 형님 소리에 잠시 눈썹만 꿈틀했을 뿐, 이제 수십 권 남은 장부에 여전히 코를 박은 채 무서운 속도로 숫자와 내역을 기록해나가고 있었다. 하나 뿐인 동기의 언제나처럼 묽은 반응에 1팀의 대형견 포지션의 신입은 곧장 찡찡 거렸다. 너 지금 집중해서 안 들리냐? 김록수 씨~ 너 마실 거 사왔다니까. 벨기에 쇼콜라 아이스!! 제 동기의 찡알거림에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로, 록수는 바인더를 치우던 그대로 서류 더미 사이의 머그컵을 가리켰다.
“놓고, 일해.”
삼 초 간의 침묵이 흘렀다. 종이가 팔랑팔랑 넘어가는 소리를 뒤이어 다양한 음색의 웃음소리가 마라카스처럼 잘강였다.
“와하하, 야, 정수야, 네가 김록수 머리 꼭대기로 올라가려면 백 년은 이른 것 같다.”
“동생 잘 챙겨주는 자상한 형님 컨셉이 망했네? 큭큭큭.”
“거 선배님들, 너무 놀리십니다~. 저도 귀여운 후배거든요?!”
부러 되도 않는 애교를 부려서 카운터를 날린 정수는 이 소란 속에서도 눈 하나 꿈쩍 않는 동기 놈을 질린 눈으로 쳐다보다가, 이내 저희들이 지난 생일에―급하게 구한 싸구려였지만, 그건 생일을 안 알려준 김록수 놈 탓이었다!―선물해준 머그컵을 꾸준하게 쓰는 것이 하도 기특해 금방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사온 아이스 초코를 컵에 쏟아 부었다.
8시에서 9시로 넘어갈 즈음에야, 제 주변에 쌓여있는 군것질거리들을 발견한 김록수가 뚱한 얼굴 한가득 물음표를 띄우고, 그 순간만을 기다렸던 통합1팀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오는 그런 아침.
세상이 뒤집어 바뀌고 몸뚱아리 하나만 남은 이들끼리 얼기설기 엮어 공고하게 세운 통합1팀의 흔한 아침 풍경이었다.
◇
오전 8시. 김록수 팀장은 수면실에서 비척비척 걸어 나왔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사설경호업체 ‘아이기스’는 노동근로법이 무색하게 아침이 이른 회사였다. 엄밀하게 말해 회사라고 부르면 안 되는 특수집단이었지만 뭐 어떤가, 남들에게 설명할 때는 그럴싸한 거짓말이 제일 잘 통하는 법이었으니까.
아이기스의 핵심 인력인 통합1팀은 언제나 유능한 인원으로 채워졌다. 특히나 이번 통합1팀을 통솔하는 김록수는 이례적으로 서포트 팀 출신 팀장이었다. 통합팀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고故 이수혁 팀장이 키워낸 괴물. 정신계 1급 능력자임에도 머리만 굴리는 게 끝이 아니라 현장에도 곧잘 뛰어들어 신체강화계들과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배짱 좋은 인간. 사람들과 이야기하기 보다는 책이나 이북 리더기에 코를 박고 소설 읽는 것을 즐기는 괴짜.
‘그래도 네 시간은 잤나.’
마지막으로 시계를 봤을 때 시침이 4에 가까웠으니 그 정도일 거라고 생각하면서 김 팀장은 통합1팀의 오피스 문을 열었다. 인기척이 없는 사무실에 불을 켜면 사용감이 짙은, 싸구려 머그잔이 제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게 보였다.
무심코 입가를 비틀었던 그는 언제 표정을 바꾸었냐는 듯 머그컵에 몇 스푼의 핫초콜렛 가루를 넣고 전기포트의 전원을 켰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달달한 냄새가 주변을 가득 채웠다.
8시에서 9시로 넘어갈 즈음 김록수는 아이스초코 몇 모금을 마신 후 캐비닛에서 달달한 먹거리 몇 개를 꺼내왔다. 봉지 따위가 바스락거리는, 그저 한 사람뿐인 고요함.
통합1팀의 흔한 아침 정경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