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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시, 논커플링, 듀님

@spideys2s2

툭, 툭

 

케일은 제 뺨을 두드리는 감각에 미간을 찡그렸다.

 

골렘을 정화하느라 불벼락의 힘을 너무 많이 써서 기절했던 것 같다. 아,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 어서 정글로 가야지. 그런데.

 

‘기절했던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누가 내 뺨을 두드리는 거지?’

 

케일은 뺨을 두드리는 손길에 기분이 확 상했지만 잠자코 눈을 떴다.

 

 

“...뭐야?”

 

“김록수! 새끼야, 빨리 정신 안 차려?”

 

“어- 정수, 네 놈이 여긴 왜-?”

 

 

케일은 말을 멈추고 제 목을 감쌌다. 평소보다 확연히 낮은 음의 목소리. 며칠 기절해서 목이 잠긴 정도가 아니다. 아예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김록수 목소리인데?’

 

케일은 목에서 뗀 손을 내려다보았다. 굳은살과 자잘한 흉터로 가득한 손이 보였다. 왼손 손등이 길게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상처 하나 없이 하얗고 곱던 손이 아니었다.

 

 

“어?”

 

 

케일은 고개를 들어 눈앞에 있는 놈을 바라봤다. 입사 동기였던 최정수였다. 그것도 마지막 기억보다 10년은 더 젊어보였다. 얼빵하게 생긴 게 딱 20대 때였다.

 

다시 고개를 숙이니 작업용 신소재로 제작된 검은 옷 곳곳이 찢겨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

 

 

케일은 지금 이 순간이 언제인지 깨달았다. 동시에 최정수가 그를 일으켜 세웠다.

 

 

“야! 빨리 가자! 머리 쓰는 놈이 후방에 있을 것이지, 왜 싸움터에 끼어들어? 이 멍청한 놈! 네가 온다고 도움이라도 될 줄 알아?”

 

 

케일은 대답하지 않고 몸을 일으켜 뒤로 돌아섰다. 무너지는 빌딩들과 하늘의 검은 홀에서 튀어나오는 괴물들이 보였다.

 

 

“..그때의 나라면 그랬겠지.”

 

 

이때의 자신은 약했다. 아직 능력도 제대로 각성하지 못한 새파란 초보였다.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고, 설치다가 도망쳐야 했을 것이다. 케일은 입 꼬리를 올렸다. 최정수가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다.

 

 

“뭐라는 거야? 이 새끼가. 지금 얼빠져 있을 때가 아니라니까?”

 

“흐흐-”

 

 

케일은 이게 꿈이라는 사실을 당연히 눈치 채고 있었다. 하지만-

 

 

‘화풀이 정도는 되겠는데’

 

 

제국도, 암도. 짜증나게 하는 것들이 많았는데 이 기회에 스트레스를 풀 수 있을 것 같았다.

 

케일의 몸에,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는 힘이 느껴졌다. 케일은 자신을 부축하려 손을 뻗는 정수를 뒤로하고 달렸다. 온몸이 욱신거렸지만 무시했다.

 

쿵- 쿵- 심장이 뛰었다. 체력이 회복되고 상처가 빠른 속도로 낫는 것이 느껴졌다.

 

비록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느껴졌다. 고대의 힘들은 전부 그대로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키에에엑-

 

매미와 파충류를 합친 것 같은 형상의 괴물이 다 찌그러진 승용차를 집어던졌다. 케일은 그쪽을 향해서 달렸다.

 

 

“야! 김록수! 하여간 저 미친 새끼!”

 

 

케일은 몬스터의 사정거리 안까지 향했다. 약 5m. 몬스터가 꼬리를 휘두르면 맞을 거리였다. 최정수가 다급하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몬스터는 케일을 사냥감으로 정했는지 먹이를 덮치기 직전의 뱀처럼 몸을 웅크렸다. 케일은 매미의 겹눈과 비슷한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능력 최대 개방.

두뇌 관련 특수 능력 세 번째, ‘정신조종(mind control)’

매개체, ‘눈’

 

 

그 순간, 암갈색의 눈동자가 붉은 빛을 머금고 빛났다.

 

 

키이이잉-

 

 

세상이 느려지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시야가 흐릿해지더니 둘로 분리되었다.

 

눈앞에 케일 자신의 시야와 몬스터의 시야가 동시에 펼쳐졌다. 몬스터의 시야 쪽으로 정신을 집중하자 가만히 있던 몬스터가 움직였다.

 

 

“김록수!!”

 

 

최정수가 케일의 앞을 막아섰다. 그러나 금방이라도 케일을 공격할 것 같았던 몬스터는 뒤로 돌아 다른 몬스터들이 있는 무리로 향해 달려갔다.

 

 

“어?”

 

 

최정수가 얼빠진 소리를 냈다. 몬스터가 사람이 아닌 동족을 공격하는 해괴한 관경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연결된 시야를 끊은 케일이 눈을 감았다. 뒤늦게 속이 뒤집히고 머릿속을 헤집는 것 같은 두통이 들이닥쳤다.

 

‘이 능력은 다 좋은데 후유증이 너무 심각해.’

 

비틀거리는 케일을 최정수가 붙잡았다.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있었다.

 

 

“야, 야. 너 괜찮냐?”

 

“우욱-”

 

 

쿨럭-

 

결국 피를 한 바가지 토한 케일이 소매로 입가를 닦았다. 붉은 선혈이 눈에 들어왔다. 케일이 처음 고대의 힘을 쓰고 피를 토했을 때 놀라지 않았던 이유였다. 이미 익숙했으니까. 오히려 고대의 힘은 지금처럼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거나 하지 않으니 더 나은 편이었다.

 

 

“너 방금 어떻게-...”

 

 

최정수의 놀란 얼굴이 점점 흐려졌다. 케일은 시야가 암전되는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눈 뜨면 할 일이 태산이겠네. 최한이 왕세자 저하께 연락 드렸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문득 의문이 들었다.

 

‘꿈속에서도 아픔이 느껴지던가?’

 

 

 

 

 

 

 

***

 

“....수가...어떻.....”

 

“이상.....능력이......”

 

 

말소리가 들렸다. 라온인가? 아니, 라온의 목소리가 아니다.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는 성인 남자의 것이었다. 그렇다고 최한이나 론의 목소리도 아닌 것 같았다. 뭐지? 뭔가 익숙한 느낌이....

 

 

“어? 깼다! 야, 정신 들어?”

 

 

눈을 뜨자 천장의 흰 빛이 눈을 찔러서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시야에 불쑥- 얼빵한 얼굴이 들어왔다.

 

 

“...네가 왜 아직도 있어?”

 

 

뭐야 아직 꿈속인가?

 

 

“잠꼬대 해? 갑자기 쓰러져서 내가 업어다 옮겨줬더니만.”

 

“....”

 

“그런데 너 아까 그거 뭐냐? 어떻게 한 거야?”

 

 

케일은 대답할 수 없었다. 최정수의 옆에 서 있던 남자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입가에 늘 걸려있던 실없는 미소를 지운 남자가 검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김록수”

 

 

아.

 

이건 너무하잖아.

 

이 사람까지 보여주면 나보고 깨어나서 어떻게 하라고.

 

 

“.....팀장”

 

 

팀장 이수혁. 그가 팔짱을 끼고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정신계열 능력자 녀석이 겁도 없이 전방으로 나와? 너 제정신이야?”

 

 

그 말에 케일은 떠올리기 싫어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수혁은 거의 항상 웃는 얼굴이었지만 팀원들이 다칠 때면 서늘한 무표정이 되었다. 자신이 못 참고 뛰어나가 다치는 날에는 언제나 저런 표정으로 잔소리가 쏟아졌다.

 

한참 훈계를 늘어놓던 이수혁을 케일은 그저 조용히 바라보았다.

 

 

“내가 말했지. 사는 게 최고라고. 몸 좀 사려라. 괴물을 때려잡든 뭘 하든 일단 살아야 할 것 아니야?”

 

“압니다.”

 

“안다는 녀석이 그래?”

 

 

‘너무 그렇게 질책하듯 보지 말아요. 당신 말대로 살려고, 다 같이 행복하게 살려고 열심히 노력중이니까.’

 

케일은 속으로 생각하며 쓰게 웃었다.

 

 

“허, 웃어?”

 

“팀장 얼굴을 다시 보니까 반가워서요.”

 

“하...말이나 못하면. 됐다. 몸은 좀 어때?”

 

“이 정도는 멀쩡합니다.”

 

“그런데 새로운 능력이라는 건 뭐냐? 정수가 그러던데”

 

“그건, 제 능력입니다.”

 

“새로운 능력의 발현인가?”

 

“아뇨. 원래부터 있었는데 그동안 능력을 제대로 개화시키지 못한 겁니다.”

 

“지금은 완전히 개화했고?”

 

 

케일은 잠시 고민했다. 이 시기의 자신은 능력을 완전히 개화하지 못했다. 총 3단계로 나누어진 능력 중 1단계 ‘기록’만을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까 사용해본 것처럼 지금 자신은 3단계까지 능력을 전부 쓸 수 있었다.

 

 

“뭐, 그렇죠.”

 

“다른 능력은 없는 건가?”

 

“원래 사용할 수 있었던 ‘기록’능력을 포함해서 총 3가지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래봤자 정신 계열인건 똑같아요.”

 

 

케일은 팀장의 질문에 대답해주면서 생각했다.

 

‘이 꿈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거지? 아까 보니까 꿈에서도 아픔이 느껴지던데....그럼 창밖으로 뛰어내릴 수도 없겠군.’

 

 

“...최정수 넌 복귀하고, 김록수 넌 다 나을 때까지 꼼짝 말고 쉬어. 알았냐?”

 

“...뭐?”

 

 

케일이 갑자기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이수혁이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어쭈, 이젠 말까지 막 놓는다 이거냐?”

 

 

팀장의 쉬라는 말 때문이 아니었지만 케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갑자기 얼굴이 굳어진 자신을 의아하게 보는 두 사람의 시선이 느껴졌다.

 

 

-꿈이 아니다.

 

-다른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니다.

 

 

머릿속에서 짱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꿈이 아니라고?’

 

-그래. 케일 헤니투스. 이것이 너의 진짜 모습인가 보구나.

 

 

케일. 아니, 김록수의 암갈색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는 여전히 우리를 쓸 수 있다.

 

 

최정수와 이수혁을 보내고 김록수는 생각에 잠겼다. 짱돌의 말대로 고대의 힘은 전부 몸속에 그대로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 꿈이 아니라니. 아무도 없는 병실 안에서 바람의 소리를 사용해본 김록수가 침음을 삼켰다. 손안에서 바람이 작게 회오리쳤다.

 

 

‘그럼 케일 헤니투스는 어떻게 된 거지?’

 

 

김록수는 암과 제국을 비롯한 온갖 문제들이 떠올라 머리가 아파왔다. 케일 없이 다른 사람들만으로는 적들을 상대하기 버거울 것이다.

 

 

‘하지만’

 

 

김록수는 마른침을 삼켰다.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손에 있는 흉터들과 굳은살이 느껴졌다. 바라지도 못했던 일이다. 나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라 떠올리기도 죄스러워서. 고통스럽고 아파서. 기억의 가장 밑바닥으로 가라앉혀두었던 이들이다. 그들이 지금 김록수의 앞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이번엔....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저쪽 세상에 남겨져 있을 케일의 사람들이 걱정되었다. 동시에 이곳에서 살아있는 김록수의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을 지키고 싶었다.

 

김록수는 상념에 빠져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날, 김록수는 바로 퇴원 수속을 밟았다. 팀장은 다 나을 때까지 쉬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크게 다친 것도 아니어서 상처도 별로 심하지 않았다. 출근한 김록수를 본 이수혁이 한숨을 쉬었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이수혁을 대신해서 최정수가 타박했다.

 

 

“넌 더 쉬지 왜 나왔어?”

 

“할 일 많잖아.”

 

 

김록수는 최정수를 지나쳐 이수혁이 앉아있는 팀장 자리로 다가갔다.

 

 

 

“팀장”

 

“왜?”

 

“고 등급 몬스터들의 약점과 공격패턴을 정리한 매뉴얼을 만들겠습니다.”

 

 

그 말에 서류를 처리하고 있던 이수혁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신입 네가 무슨 수로?”

 

“이번에 각성한 제 능력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기록 능력 덕분에 지금까지 나타났던 온갖 몬스터들의 특징이 김록수의 머릿속에 기록되어져 있으니까.

 

김록수의 말에 팀장이 눈을 크게 떴다. 그런 매뉴얼을 만들어 놓는다면 앞으로 일할 때 팀원들이 훨씬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 사망자도 크게 줄어들겠지. 팀장의 얼굴에 기쁨이 스쳤다가 이내 침착해졌다.

 

 

“부작용은?”

 

“예?”

 

“능력의 부작용이 있을 것 아니야. 그런 엄청난 능력이면 더더욱”

 

 

김록수는 말문이 막혔다. 앞으로 일을 훨씬 안전하고 편하게 만들어줄 능력이 생겼다는데 바로 김록수가 겪을 부작용부터 묻다니. 팀장이 걱정스럽게 김록수를 바라봤다. 정신계열 능력은 신체계열과는 달리 부작용이 심한 편이기 때문이다.

 

‘그래. 이런 사람이었지.’

 

김록수는 저도 모르게 웃으면서 말했다.

 

 

“부작용은 특별히 없으니까 걱정 마십쇼.”

 

“정말이야?”

 

 

2단계 능력의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뉴얼을 만드는 일은 기록되어져 있는 기억을 끄집어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간단했다. 김록수는 자리로 돌아가 곧장 몬스터들의 특징을 정리하는 일에 매진했다. 어쩌다보니 야근을 자처하게 되었지만 괜찮았다. 얼른 끝내고 나중에 쉬면되니까.

 

김록수는 어젯밤에 결정을 내렸다. 내가 고민해봤자 뭐하겠는가. 그렇다고 저쪽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어느 곳에 있던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부터 끝내야겠지.’

 

김록수는 책상 한 켠에 놓여진 달력을 흘끗 봤다.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김록수는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이 정신계열 능력인 것을 감사했다. 얼마 후면 바로 ‘그 날’이다, 도심 한 가운데서 벌어진 비극.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 날.

 

‘이번엔 막을 수 있다.’

 

이왕 돌아온 거 제대로 세상 한번 구하고 맘 편하게 백수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

 

 

 

“...이, 인간?”

 

 

김록수는 화들짝 놀랐다. 다신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목소리를 들었으니까. 검푸르고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보였다. 앞발에는 웬 수건이 들려있었다.

 

 

“라온?”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김록수는 몸을 일으켰다. 어깨까지 오는 붉은 색 머리카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손을 얼굴 앞으로 들어올렸다. 상처하나 없는 하얗고 마른 손이 보였다. 제 얼굴을 만져보자 백작가 도련님답게 부드럽고 매끈한 피부가 느껴졌다. 2년 동안 익숙해진 ‘케일 헤니투스’의 얼굴이었다.

 

 

“어떻게...?”

 

 

돌아올 수 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하루만에? 역시 그건 다 꿈이었나? 아니면 지금이 꿈인가?

 

케일이 속으로 짱돌을 불렀다.

 

‘지금 혹시 꿈인가?’

 

-꿈이 아니다. 전에도 지금도 현실이 맞다.

 

‘둘 다 현실이라고?’

 

-그래. 나도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네가 잠들자 이 몸으로 깨어났다.

 

 

짱돌의 말에 케일은 마지막으로 무얼 하고 있었는지 떠올렸다. 분명히 회사에서 철야로 일하다가 이만하고 자라는 팀장과 선배들의 성화에 못 이겨 잠깐 눈 좀 붙이려고 했었지.

 

 

-왜 그러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탁자위에 놓여진 영상통신구로 보이는 알베르가 케일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지났습니까?”

 

 

케일은 담담하게 물었다. 자신은 기절했다가 눈을 뜬 것 같았고 직전의 상황도 명확하게 기억이 났다. 다만 자신에겐 이틀이었지만 여기선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몰랐다. 알베르가 대답했다.

 

 

-네가 기절한지 이제 겨우 3시간이 지났다.

 

“...생각보다 얼마 안됐네요.”

 

 

케일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멀쩡해 보였다. 그게 중요했다. 마음이 놓였다. 아무래도 자신은 생각보다 더 이들을 걱정하고 있던 모양이다.

 

알베르가 현재 각국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것을 들은 케일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고, 신이라는 작자가 뭘 바라는지도 모르지만.

 

지금 당장 해야만 하는,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정글로 가겠습니다.”

 

 

그 후로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케일은 깨달았다.

 

‘잠들면 바뀌는군.’

 

어젯밤까지 케일이 되어 하얀 별과 열심히 싸웠던 김록수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날짜를 확인했다. 오늘이 ‘그 날’이었다.

 

도심 한가운데 처음 보는 몬스터가 나타나 수백, 수천 명이 사망한 날. 하필이면 이 몬스터가 지하에 있었고 공기 중으로 독을 내뿜는 종이였다는 게 문제였다.

 

김록수는 출근하자마자 대뜸 선언했다.

 

 

“저 오늘 쉽니다.”

 

“뭐? 갑자기 왜? 어디 아프냐?”

 

 

이수혁이 김록수의 몸을 꼼꼼히 뜯어봤다. 워낙에 몸을 함부로 쓰는 녀석이라서 주의해야 한다. 또 어디서 다쳐온 걸지도 모른다.

 

 

“아뇨. 아픈 데는 없는데요.”

 

“그럼?”

 

“이유는 묻지 마시고요. 암튼 그런 걸로 아십쇼.”

 

 

말을 마친 김록수가 회사 밖으로 나갔다. 어느 정도 햇병아리 티를 벗었다지만 아직 신입인 녀석의 패기에 선배들이 할 말을 잃었다. 그래도 뭐라고 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김록수가 며칠 밤을 철야해가며 만든 매뉴얼이 큰 도움이 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단한 신입이 들어왔다고 칭찬이 자자했다.

 

 

“저 녀석....갑자기 무슨 일이야?”

 

“일중독자 녀석이 무슨 바람이 불었대?”

 

 

선배들의 잡담을 배경으로 최정수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김록수 저 녀석 눈빛이 꼭 사고 칠 때 눈빛인데....’

 

 

 

한 낮의 시내에는 사람이 많았다. 김록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기를 유모차에 태운 엄마가 지나가고, 그 뒤로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걷는 연인들이 보였다.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거리를 쏘다니는 아이들도 보였다.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어도 살아있는 사람들은 삶을 살아간다.

 

거리를 걷던 김록수가 걸음을 멈추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 근처였지.’

 

A-5구역. 지역을 나타내는 알파벳은 인구수에 따라 붙여졌다. 알파벳 순서가 앞에 있을수록 인구수가 많은 지역이다. 즉, 이곳은 한국에서 가장 사람이 많은 곳 중 하나란 말이었다.

 

김록수는 고개를 내려 땅을 바라보며 능력을 사용했다.

 

 

두뇌 관련 특수 능력 두 번째, ‘분석(analysis)’

 

 

김록수의 세상이 흑백으로 바뀌었다. 능력의 부작용인 두통이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빛을 발견했다. 땅속에 숨어있을 몬스터의 형체와 놈의 약점이 붉게 빛나는 것이 김록수의 눈에 보였다.

 

 

김록수는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아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쉬겠다더니 무슨 일이야?

 

“팀장. 저 믿습니까?”

 

-뭐?

 

“팀장님”

 

 

갑자기 그게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냐는 말을 하려던 팀장이 멈칫했다. 김록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지하에 숨어 땅위로 독기를 내뿜는 몬스터를 발견했습니다. 당장 처리하지 않으면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겁니다.”

 

-...어디야?

 

“A-5구역입니다.”

 

 

침음을 애써 삼키는 듯 한 침묵이 잠시 이어졌다.

 

 

-바로 가지.

 

 

전화가 뚝 끊어졌다. 이윽고 도착한 이수혁과 팀원들이 주변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은 거리라서 꽤 시간이 걸렸다.

 

 

“이 아래에 있는 건가?”

 

 

김록수에게 다가온 이수혁이 물었다. 김록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해도 됩니까?”

 

“정신 계열 녀석이 무슨 소리야? 네 역할은 여기까지야. 뒤로 빠져 있어.”

 

 

김록수는 아직 능력을 다 드러내지 않았다. 원래 가지고 있던 능력은 정신계 드러내보였지만 고대의 힘은 남들 앞에서 사용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자꾸 자신을 후방으로 보내려는 이수혁과, 자기보다 먼저 죽은 주제에 전투 도중 저를 감싸려고 하는 최정수 때문에 짜증이 났다. 이번 기회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김록수가 더 이상 약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김록수는 말없이 손을 들어올렸다.

 

 

-저번처럼 하면 돼? 그럼 맛있는 걸 줄 거야?

 

‘그래. 실컷 먹게 해주마.’

 

 

그의 의지에 따라 먹보 신녀가 가진 나무의 힘이 반응했다.

 

쿠구구궁-

 

미약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팀원들이 각자 무기를 빼어들고 사방을 경계했다.

 

 

“땅이....흔들리고 있어!”

 

 

누군가가 외쳤다. 진동은 점점 더 심해졌다. 갑작스러운 지진에 사람들이 동요했다. 단 한사람, 김록수만은 동요하지 않았다.

 

우지직-빠각-

 

땅이 들썩이다 못해 일그러졌다. 아스팔트 바닥이 갈라지고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콰앙-

키에에엑-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몬스터를 칭칭 휘감은 채 땅 위로 솟았다. 몬스터는 발버둥 치며 벗어나려 했지만 그럴수록 더욱 숨통을 조여 올뿐이었다. 몬스터가 뿜어내는 독 또한 나무에 흡수되었다.

 

도시라고 해도 땅속에는 나무뿌리들이 있었다. 정글에서 사용했던 죽은 마나를 흡수하는 나무들. 거대한 나무뿌리들이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몬스터를 제압했다. 믿을 수 없는 관경에 사람들이 입을 벌렸다.

 

 

“뭐 하십니까? 마무리 안하고”

 

 

김록수가 태연하게 팀원들을 독촉했다. 팀장이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김록수, 너....어떻게?”

 

 

김록수는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보시다시피 마법계열 능력도 각성해서요.”

 

 

한국에서 전 세계 최초의 듀얼 능력 각성자가 나타난 순간이었다.

 

 

 

 

 

 

 

***

 

 

김록수는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 큰 전투가 있는 날에는 할 수 있는 모든 대비를 했다. 덕분에 지금까지 팀원들 중 누구 한명도 죽거나 크게 다치지 않았다. 먹보 신녀의 힘을 처음 사용한 날 이후로 김록수가 최전방에 나서는 것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김록수 너 또 다쳤잖아! 그러게 몸도 약한 녀석이 최전방에 왜 가? 위험하게”

 

“최정수”

 

 

한 명만 빼고 말이다.

 

 

“이 정도는 그냥 긁힌 거야.”

 

“그런 말은 나처럼 튼튼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거거든? 허구헌날 피토하는 녀석이 무슨. 몸 좀 사려라. 넌 신체계열 능력자랑 다르게 몸도 약하잖아.”

 

괴물한테 한방 맞으면 날아가는 녀석이 겁도 없다면서 투덜투덜 거리는 최정수의 말에 김록수가 피식 웃었다.

 

 

‘이 녀석이 최한 조카라니’

 

 

최한이랑 안 닮았는데? 하긴 사촌조카쯤 되면 많이 닮진 않겠구나. 김록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미묘한 눈으로 최정수를 바라보았다.

 

 

‘곧 모두가 죽는다.’

 

 

과거에는 김록수 자신만 살아남고, 팀원들이 전부 죽었다. 그 날이 곧 다가온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막는다.’

 

 

이번에는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다. 김록수는 이미 준비를 끝냈다. 과거와 같이 그 간의 데이터로 통계를 내서 예측한 것으로 알리고 등장할 게이트의 규모와 괴물의 강함을 보고했다.

 

 

“너 갑자기 왜 심각한 얼굴하고 그래?”

 

“최정수 너 과수원 할 거랬지?”

 

“엉? 그래! 그리고 너도 끌고 가서 같이 일 시킬 거야. 이미 팀장님이랑 얘기 끝내놨어.”

 

 

김록수는 킬킬거리며 제 어깨에 팔을 두르는 최정수를 밀어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응?”

 

“내가 꼭 그렇게 만들어줄게.”

 

“나랑 같이 귀농하려고? 네가 웬일이냐? 맨날 백수할거라고 그러더니”

 

 

김록수는 최정수를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봤다.

 

 

“그러니까 죽지마라.”

 

 

그래. 최정수도, 팀장도 살리고 까짓 거 농사도 좀 도와주지 뭐. 백수는 할 거지만 가끔 정도면 일 해줄 수 있다.

 

이번에는 내가 너를 살릴 것이다.

 

 

 

‘과거에 너는 나를 위해 죽었으니까.’

 

 

 

 

 

 

 

 

***

 

 

“크윽-”

 

 

이수혁은 울컥 올라오는 핏물을 뱉었다. 사상 최악의 규모였다. 김록수가 예측해준 결과는 정확했다. 다만 지원군이 모자랐다. 빌어먹을 대형 길드 놈들은 괴물이 너무 강하자 또다시 꽁무니를 뺐다. 그래서 전력이 모자랐다.

 

 

“제기랄!”

 

 

김록수는 방패를 펼쳐 공격을 막으며 욕을 내뱉었다. 한 번의 공격으로 부서지지 않는 방패가 산산조각이 났다.

 

이미 불벼락을 썼지만 저 빌어먹게도 튼튼한 괴물은 그걸 버텨냈다.

 

김록수는 주변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팀원들을 바라봤다. 아직까지 죽은 사람은 없지만 상처가 늘어가고 있었다.

 

땅의 힘을 사용했다. 땅에서 솟아오른 석창이 쏘아졌다.

 

슬슬 체력이 한계에 다다른 것이 느껴졌다.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심장의 활력이 체력이 소모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모자라.’

 

이 정도로는 저 괴물을 죽일 수 없었다. 더 강력한 힘이 필요했다. 저들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살릴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쿨럭-”

 

 

피를 한 움큼 토한 김록수가 흐려지는 시야를 다잡으려 인상을 찌푸렸다. 그 때, 고대의 힘과는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들을 살려주마.

 

 

김록수는 낯선 목소리에 몸을 굳혔다.

 

 

-대신, 네가 죽어야 해.

 

 

그 말에 김록수는 낯선 목소리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죽음의 신’

 

김록수는 케이지가 전해줬던 종이를 떠올렸다.

 

 

<선택권을 주마.>

<최정수는 그 때 죽으면 안 됐어. 김록수. 네가 죽어야 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갈지, 아니면 남을지 선택하라고 했었지.’

 

그럼 이 모든 게 죽음의 신이 벌인 일이었나? 김록수는 매일 잠에 들 때마다 케일로 깨어났다. 잠을 길게 자든 짧게 자든 같았다. 그러다가 다시 케일이 잠들면 김록수로 깨어났다.

 

 

-지금 여기서 네가 죽으면 다른 이들은 살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너는 저쪽 세상에서 영원히 살게 되겠지. 어떻게 할 건가?

 

 

‘뭘 물어봐.’

 

 

김록수는 최정수를 바라봤다. 괴물의 공격에 맞은 최정수가 건물 벽에 처박혔다. 이수혁을 바라봤다. 이수혁은 머리가 깨졌는지 얼굴이 피로 흥건했고 찢어진 옆구리에서 피가 흘렀다.

 

 

“날 죽여라. 대신 다른 사람들을 살려줘.”

 

-그래.

 

 

허공이 찢어졌다. 찢어진 균열에서 검은색 연기가 퍼져 나왔다. 검은 연기는 불길한 기운을 머금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연기는 괴물만을 감쌌다. 연기에 닿은 괴물이 움직임을 멈추더니 천천히 쓰러졌다. 지금까지 고생한 것이 무색하게도 허무한 죽음이었다.

 

 

-그게 너의 선택이구나.

 

 

김록수는 얼굴을 찡그렸다. 누구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다. 자신은 케일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남들은 아니었다.

 

갑자기 괴물들이 전부 죽자 사람들은 무기를 내렸다. 다들 놀라고 당황한 얼굴이었다. 김록수는 몸에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죽음은 생각보다 고통스럽지 않았다. 김록수가 비틀거리자 이쪽으로 다가오던 이수혁과 최정수가 놀란 얼굴로 무언가 외쳤다.

 

‘이번엔 지켰어.’

 

김록수는 흐릿한 시야로 보이는 얼굴들을 마지막으로 눈을 감았다.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다.

 

 

 

 

 

 

다음날 신문에는 이런 기사가 났다.

 

[B-1구역 대규모 전투. 0등급 몬스터 최초 등장. 사망자 1명]

 

 

 

 

 

 

 

 

***

 

 

“헉-”

 

 

케일은 숨을 들이키며 눈을 떴다.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래를 바라보니 침대시트를 움켜쥔 손이 떨리고 있었다. 창백하고 마른손. 케일 헤니투스의 손이었다.

 

‘죽음의 신 말대로군,’

 

케일은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죽음의 감각은 썩 유쾌하진 않았다.

 

사위는 고요했다. 아직 새벽인 모양이었다.

 

 

“음냐....인간....히히”

 

 

무슨 꿈을 꾸는지 라온이 잠꼬대를 하며 히죽 웃었다. 온과 홍도 라온 옆에 붙어서 곤히 자고 있었다. 케일은 라온의 동그란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다들 슬퍼하겠지. 어쩌면 최정수는 울지도 모르겠다. 팀장은 멍청한 놈이라며 욕하려나. 아, 전에 선배들이 자기보다 먼저 죽으면 가만 안둔다고 했었는데....하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당신들이 살아서. 정말 다행이다.

 

‘걱정 하지 말아요. 나는 여기서 잘 살아 있으니까.’

 

‘김록수’는 죽었지만 나는 ‘케일 헤니투스’로 살아갈 것이다. 이 아이들과,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사는 게 최고라며. 그러니까 당신들도 행복하게 살아.’

 

내 생각은 조금만 하고, 조금만 슬퍼하고, 조금만 아파했으면. 내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절망에 삼켜지지 않기를. 케일은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랐다.

 

 

아이들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면서 케일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창가에 어슴푸레한 빛이 스몄다. 이제 새벽이 지나고 아침이 올 시간이다. 날이 밝으면 론이 레몬에이드를 들고 케일을 깨우러 올 것이다. 그러면 비크로스가 만든 아침밥을 다 함께 먹겠지.

 

새로운 하루의 시작이었다.

오전창   오전오후창

첫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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